박찬욱 감독의 말이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틈틈이 독서에 몰두하는 박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소설을 즐겨 읽는다. 영화 ‘박쥐’(2009년)의 기본 구도와 인물 관계 등 많은 점이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1867년)에 바탕을 두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봉준호 감독은 소문난 만화광이다. 2004년 겨울에 서울 홍익대 근처 만화서점에서 만화 ‘설국열차’를 우연히 읽고 매료된 것이 영화 ‘설국열차’(2013년)로까지 이어졌다. 류승완 감독은 범죄추리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을 애독했다. 특히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시나리오와 꼼꼼하게 비교, 분석하고 인물 평전과 인터뷰집도 즐겨 읽는다.
‘아바타’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등 세계적 흥행작을 내놓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먼 거리를 버스로 통학하면서 SF 읽기에 탐닉하였다. 소설에 묘사된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습관도 들였으니 영화 스토리보드 훈련을 한 셈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를 애호한 그는 ‘하루에 영화 세 편을 보고 이틀에 글 한 편을 쓰고 일주일에 책 세 권을 읽는’ 원칙을 세워 지키기 위해 애썼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젊은 시절 헌책방에서 사온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에 푹 빠져 지냈다. “책상에 앉아서, 잠자리에 누워서, 그리고 걸으면서 읽었다”는 그의 말은, 11세기 중국 송나라의 문장가 구양수가 글을 읽고 짓기 좋은 곳으로 ‘말 위, 침상, 화장실’을 든 것을 떠올리게 한다. 구로사와 감독이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등의 작품을 영화로 새롭게 창조해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독서에세이집 ‘책으로 가는 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라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일정 기간 모아서 더 나은 투자나 구매의 밑천이 되는 돈, 종잣돈이다. 많은 영화감독에게 책은 더 나은 영화의 밑천이 되는 일종의 종자 콘텐츠다. 좋은 씨앗을 많이 가진 사람이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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