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취임한 대통령의 성패는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의 정체성)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격언이다. PI, 정체성 혹은 이미지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출발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투박한 말투에서 드러나는 진솔함과 선을 넘지 않는 정제된 언어와 태도가 지지층에는 기대감을, 일부 보수층에는 일말의 안도감을 주는 듯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 60일이 지나도록 70% 후반의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는 배경에는 문 대통령 PI가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집권 초기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은 선의(善意)를 꾸준히 밀어붙이면 국민이 언젠가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한 언어에 환호했던 국민은 어느 순간 그에게 등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 국정 지지율은 40%대로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도 아쉬움을 드러낸 적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품격과 위엄이 부족했다. (중략)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는 극복해야 할 문제였지만, 국민에게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일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중략) 그(버락 오바마 대통령)는 사회적 소수파에 속한 시민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지만 매우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했다. 나도 그렇게 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운명이다·노 전 대통령 자서전)
이런 반성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 정부 차원의 PI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2억4000만 원의 예산이 배정되면서부터다.
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반성과 교훈의 자산으로 삼고 있는 문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들은 2012년 대선 때부터 PI팀을 전략적으로 가동했다. 그 중심에는 현 대통령 의전비서관실 탁현민 선임행정관이 있었다.
5·9대선 유세 과정에서 패션쇼 모델을 연상시키는 런웨이 방식으로 인파를 뚫고 무대에 등장하는 문재인 후보, 2012년 대선 때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걸어 내려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김정숙 여사 등 한국 선거에서 성공한 유세로 평가받는 여러 장면이 탁 행정관의 손에서 탄생했다. 무대 연출뿐 아니라 탁 행정관은 문 대통령이 어떤 사람과 만나 어떻게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할지까지도 챙겼다고 전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준비된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대통령이 믿을 것은 여론의 지지뿐”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분간 탁 행정관을 놓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나 PI는 갓 출범한 정권이 자리를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집권 초 감동받을 준비가 돼 있는 국민의 마음을 고려하면 PI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뒤 국민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국정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국회와의 협치는 어떻게 풀 것인가.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등 PI로만은 풀 수 없는 산적한 난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가칭)젠더폭력방지법 제정 및 국가행동계획 수립 계획 등을 10일 발표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그래서 탁현민은?”이라며 반문하고 있다. 탁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의 탄생과 연착륙에 크게 기여했지만 왜곡된 성 인식으로 스스로 정부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목 안의 가시가 된 셈이다. 그의 판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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