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통찰은 내 안의 모순을 찾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2일 03시 00분


북한강 남이섬에서 만난 아침의 여명.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인
이 여명이 헬렌 켈러에겐 놀라운 기적이었다
북한강 남이섬에서 만난 아침의 여명.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인 이 여명이 헬렌 켈러에겐 놀라운 기적이었다
조성하 전문기자
조성하 전문기자
F-4 팬텀을 모는 미 해군 함재기 조종사 더글러스 해링턴은 A-6 전투기로 재배치됐다. 그런데 유능한 조종사인 그가 항공모함 착륙시험에서 매번 질타를 받았다. 제대로 착륙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이 한마디를 듣고 말았다. 내일도 실패하면 전역신고를 해야 할 거라는. 고민에 싸인 그를 동료들이 위로하며 이것저것 착륙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시도해 보았던 것들. 그래서 귀를 닫아버렸다. 그때 착함신호장교가 찾아왔다. 그는 더 이상 충고는 듣고 싶지 않다며 대화를 거절한다.

그 장교는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고 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일깨우려는 거라고. 그 말은 이랬다. F-4 팬텀은 조종석과 부조종석이 직렬인 데 반해 A-6는 병렬이다. 따라서 A-6 기종은 조종사가 착륙유도선에서 왼편으로 45cm 벗어나 있다. 그러니 팬텀기처럼 유도선에 기수를 맞춰 내리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건 시차 효과(parallax effect)다. 양 눈 가운데 둔 손가락을 한 눈으로만 보면 좌우로 비켜나 보이는 현상이다. 순간 그는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깨달았다. 그러자 행동교정이 진행됐다. 이튿날 착륙은 완벽했고 그는 조종사 임무를 지속했다.

이건 미 공군에서 활동했던 응용심리학자 게리 클라인 박사가 ‘생각(Thinking)’이란 책에서 밝힌 통찰(洞察)의 사례다. 통찰은 ‘밝을’ 통에 ‘살필’ 찰 자를 쓰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이라 풀이된다. 하지만 이처럼 통찰 과정을 알기 쉽고 분명하게 설명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클라인 박사의 관심은 ‘이런 통찰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이다. 그는 이 경우처럼 모순을 찾아주는 거라고 했다. 스스로 깨달아 사고모형이 자연스레 변하도록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건 일본 나가노현의 젠코지(善光寺)라는 절에서다. 이 절 본전 밑에는 굴이 있고 사람들은 500엔을 내고 거길 통과한다. 천장이 낮아 오리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는 굴은 몇 발짝 들어서자 이내 암흑천지로 바뀌었다. 그러자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굴 안에서 희망이라고는 절반 지점을 알리는 극락세상의 문고리를 잡는 것. 한참을 더듬고 나아가자 그게 손에 잡혔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제 곧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일순 공포와 불안이 사라져서다. 그리고 몇 걸음 뒤 실낱같은 빛줄기가 비쳤다.

나는 우리가 왜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지를 이보다 분명하게 알려준 것을 보지 못했다. 그건 굴 안에서 공포와 불안에 허둥대던 내 모습이 해탈한 부처의 눈에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 자각이다. 거기서 문고리와 빛은 진리의 세상, 즉 깨달음인데 생각해보면 그게 내겐 통찰의 순간이었다. 즉, 내가 사는 세상이 그런 어둠에 싸인 동굴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행동교정이 일어났다. 진리의 빛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이런 글로 또 다른 통찰의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글인데 우리가 소유한 것에 대한 가치를 새삼 느끼도록 다그친다.

‘첫날에는 내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황홀한 노을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그날은 한잠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둘째 날에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바라볼 것이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다. 집에 돌아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나는 이 사흘만이라도 눈을 뜨고 볼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방금 숲 산책을 마친 친구에게 무얼 봤냐고 물었더니 ‘별로 특별한 게 없다’는 대답을 들어서다.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풍경인데….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도 마찬가지다. 우리 중에 누가 그런 생각을 해봤을지. 일상의 별로 특별할 게 없는 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통찰은 이미 우리 안에서 일어났다. 이제 남은 일은 그걸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행동교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통찰은 무의미하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통찰#내 안의 모순#행동교정#three days to see#사흘만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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