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청계단상]집값 오르면 출산율 떨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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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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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지난 주말에 중학교 동창 몇 명과 만났다. 모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살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일터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떨어져 살아 1년에 두어 번 만난다. 이날 모인 동창들은 모두 아이를 2명 뒀다는 공통점이 있다. 큰아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 아이는 대학에 재학 중인 것도 엇비슷했다. 아들만 있든 딸만 있든 아들딸을 뒀든 간에 동창들의 공통 관심사가 있었다. 자녀의 취업 못지않은 고민거리로, 결혼 적령기에 막 접어들어 머지않아 독립할 첫째 아이의 집 문제였다.

요즘 젊은이의 평균 결혼 연령은 30대 초반이다. 첫째 아이들 나이가 20대 후반이니 준비할 시간이 산술적으로는 몇 년 남았다. 하지만 아이가 눈에 콩깍지가 씌어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아이가 일찍 결혼한다면 부모로서는 축하하는 게 도리이지만 마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부자처럼 다 챙겨주지는 못하더라도 수십 년간 품에서 키운 자식을 빈손으로 내보낼 수 없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그런데 직장인 사이에서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 같은 세태를 반영한 조어가 널리 쓰일 정도로 고용 사정이 불안하다 보니 마음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크다. 정년이 얼마 안 남아 노후 준비도 벅찬데 아이 분가에 드는 목돈까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한 게 이유다.

동창들이 아이 집을 걱정하는 것은 크게 오른 가격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6월 3.3m²당 2000만 원을 넘어섰고, 평균 전세가는 1354만 원이다. 결혼 후 출산을 감안해 50m²(약 15평)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2억 원, 사려면 3억 원이 필요하다. 시중에선 1억 원을 쉽게 말하지만 샐러리맨이 허리띠를 졸라매도 한 해 1000만 원을 모으기가 힘겹다. 서울 전체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6억2116만 원이다. 30년간 일하고 저축해도 대출 없이는 서울에서 중간 가격 아파트를 사기 어렵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의 혜택을 입어 상대적으로 잘산다는 서울 거주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평균 자산은 5억1000만 원이다. 그중 74.1%인 3억8100만 원은 소유나 전세로 주거 부동산에 묶여 있다. 여기서 평균 부채 3600만 원을 빼면 가용할 수 있는 자산은 1억 원도 안 된다(서울연구원 자료).

첫째 아이가 독립하면 삶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먹고 입는 것은 스스로 해결할 것 같은데 집은 장만하지 못할 게 뻔하다. 그래서 분가할 때 형편에 맞춰 얼마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노후 계획을 다시 안 짜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다. 결혼 때 아들은 신혼집, 딸은 세간을 마련하는 오랜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예비부부가 능력대로 분담하는 새 풍속이 자리 잡는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집값이 오르자 서울을 떠나거나 고시원, 반지하, 옥탑방 같은 열악한 주거시설을 전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젊은이에게 가장 높은 장애물은 주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자리는 눈높이와 적성 등을 고려한 선택적 문제인 반면 주거는 뭉칫돈이 없으면 선택권이 없어 더 절박한 절대적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일자리,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국정 3대 우선과제로 정했다. 주택 가격 상승률이 높을수록 출산율은 더 떨어진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고령화의 원인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가격이 1% 오르면 출산율은 0.001%포인트 하락한다. 이는 1992∼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대상 회원국의 경제·사회 지표와 각국 출산율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다. 한은은 인구 고령화에다 생산가능인구까지 줄면서 소비와 투자가 크게 위축돼 향후 10년 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집값 안정은 확실한 저출산 대책이고 복지 정책이고 시급한 현안이다. 집값이 오르면 서민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래서 주거 불안의 고통을 체험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전셋값 인상에 6번 이사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는 취임 때 주택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실수요자와 세입자를 울리고 불로소득으로 근로자가 일할 맛 잃게 만드는 투기를 없앤다면 정권 교체를 실감할 것 같다. 전세 소득공제와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해 집주인의 갑질과 임대소득 탈루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가 스스로 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부모도 근심 하나 내려놓을 수 있는 새로운 주거 정책을 기대한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집값#출산율#주택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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