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정신분석 시간입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이 분석가인 내게 농담을 합니다.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요? 웃어야 하나요, 아니면 웃음을 참아야 할까요? 정신분석의 메카로 불리던 미국 뉴욕시의 저명 분석가 두 사람이 오래전에 농담을 둘러싸고 논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석가는 청중이 아니고 치료하는 사람이므로 농담에 웃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은 반박했습니다.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 인간적이지 않고, 농담을 한 사람이 거리감을 느끼며, 그 사람에게 거부당한 느낌을 주니까 자연스럽게 웃어야 한다고.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웃기는 이야기면 당연히 웃어야 합니다. 하지만 분석에서는 웃고 넘기기로 끝내면 도움이 안 됩니다. 그가, 그녀가 그런 농담을 하필 이 시점에 왜, 어떻게 내게 했는지를 대화를 이어가며 기술적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정신분석은 일상의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마음속 움직임의 의미를 전문적으로 찾아 활용하는 세밀한 작업입니다.
정신분석은 말로 합니다. 약물치료, 수술, 물리치료 또는 방사선치료처럼 특별한 물질이나 도구를 쓰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대화를 항상 도구로 써서 이해하고 치료합니다. 그러니 말만으로도 분석받는 사람의 마음에 파장이 일어나서 마음이 바뀌는 현상이 정말 신기하지 않으세요? 정신분석 이외에도 말로 하는 치료는 인지행동치료, 최면치료, 부부치료, 집단치료, 심리극 등등 많이 있습니다만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이 대표 주자 역할을 해왔음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어떻게 해서 치료적인 변화를 불러올까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정신분석의 효능은 특별한 것이 없고 분석가가 분석받는 사람을 그저 포근하게 받아주고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해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약물치료에도 ‘가짜 약 효과’가 30% 정도 있듯이 말로 하는 모든 치료에도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하는 고민상담도 잠시 효과가 있지 않나요? 그러나 상대에 대한 수용과 이해만으로 갈등이 해소되고 증상이 좋아지고 성격이 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의 결정적인 효과는 어디에서 올까요.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대화로 맺어진 관계에서 분석이 지속되는 힘이 얻어집니다. 이를 ‘작업적 동맹’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만의 공간,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분석용 카우치, 비밀 보장 등이 바탕이 되지만 두 사람이 성격도 어느 정도 편안하게 맞아야 합니다. 성격과 성격이 잘 맞아서 관계가 좋아야 결과도 좋습니다. 대인관계의 치료 효과는 의사가 처방하고 환자가 따르기만 하는 약물치료에서도 밝혀진 사실입니다. 환자가 보기에 의사가 친근한 느낌을 주거나, 급할 때 연락이 잘 되거나, 어려운 이야기도 쉬운 말로 잘 풀어서 설명하면 약물을 꼬박꼬박 복용하게 됩니다.
말로 하는 치료인 정신분석에서 분석가는 분석받는 사람이 두려움이나 불안 없이 자유롭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이어가도록 전문적인 기법을 써서 도와야 합니다. 이를 자유연상이라고 합니다만, 그냥 마음속 이야기를 가리지 않고 분석가에게 다 하는 겁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우선 분석가에게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야 분석받는 사람이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관계에서도 심리적인 저항이 걸려서 자유연상을 하려 해도 잡념이 파고듭니다. 아픈 상처의 기억이나 숨기고 싶은 이야기나 창피한 경험을 다시 꺼내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저항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체계적으로 해야 분석이 진행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로 돌렸을 때 이를 지적하고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 것 같다고 해석해줘야 합니다. 좋은 관계만 가지고는 정신분석 과정이 생산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분석받는 사람이 스스로 성찰을 해 통찰에 이르도록 도우려면 분석가의 해석이 아주 중요합니다. 분석가는 해석을 통해 분석받는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루고, 같은 맥락의 해석을 반복해서 통찰을 굳혀 나갑니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을 끝낸 사람들은 분석 경험에 대해 무엇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할까요. 그들에게 연구자가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유감스럽게도(?) 분석가의 멋진 해석보다는 분석가가 자기를 돌봐준 따듯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차를 주차하다가 주차장에 있던 분석가의 차에 경미한 흠집을 냈고, 분석가에게 이를 사과하고 보상하겠다고 했으나, 약간 긁힌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감동받았다는 식입니다. 이런 경험은 재치 넘치는 해석보다 마음에 오래 기억됩니다. 그렇다고 내 차에 접촉사고를 내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프로이트 사후에 후배 분석가들이 바람직한 분석 태도를 무덤덤하고, 중립적이고, 냉철한 것으로 착각하고 권장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정신분석은 인간적인 상호작용이지 기계적이거나 도식적인 경험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프로이트 자신은 식사를 거르고 온 환자에게 요깃거리를 제공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관계만으로 치료 효과를 올리려고 관계에 잘못 몰입하다가는 함정에 빠집니다. 음식을 할 때 불 조절이 중요한 것처럼 분석 상황에서도 안전거리와 경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와, 그녀와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물리적인 거리와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가까워져서 경계를 넘으면 일탈로 이어집니다. 너무 멀면 저항이 증가하고 분석은 주춤거립니다. 호의적인 인간관계와 냉철한 해석의 반복 작업을 적절히 병행해야 분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혹시 말로 하는 치료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절대로 아닙니다. 약물은 몸 밖으로 배출되면 부작용이 줄어들지만 말은 때로는 가슴에 박힌 칼이 되어 오랫동안 고통을 줍니다. 말로 하는 치료라고 만만하게 보면 부작용을 겪습니다. 전문가의 말과 비전문가의 말은 언뜻 보면 ‘아’와 ‘어’의 차이처럼 사소하게 보이지만 아주 다릅니다. 멋진 방에서 카우치만 쓴다고 정신분석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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