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 경제]국회 청소노동자는 아직 비정규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4일 03시 00분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서울 도심 지하철의 한 환승역을 청소하는 18년 차 베테랑 김 반장에게 가장 힘든 일은 지하철 바닥 왁스 청소, 가장 기쁜 일은 160만 원 남짓 하는 월급을 받는 것이다. 이 일을 시작한 2000년 이후 14년 동안은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고 이후 서울도시철도공사 자회사 소속 정규직이 됐다. 신분이 상승했다고 근무 여건이 나아진 건 아니다.

신분 상승 대가가 정년 감축

올해 초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국회 사무처 소속의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소식을 김 반장은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와 관련해 김 반장은 “그게 잘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보도가 나간 지 6개월이 더 지난 일인데 그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알고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국회 사무처에 확인해 보니 어이없게도 국회 청소노동자 203명은 모두 아직 기간제 근로자, 즉 비정규직 상태였다. 국회 사무처는 2년 뒤인 2019년부터 이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단계인 무기계약직으로 바꿀 예정이다. 당장 신분을 높여주려면 채용공고를 새로 내야 하는데 그럴 경우 기존 직원 중 탈락자가 생길 수 있어서 기간제라는 과도기를 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간제 정규직’이라는 형용모순을 만들어냈다.

국회는 6개월 전 청소노동자가 바로 정직원이 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이런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혔어야 했다. 힘든 중간 과정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 통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높은 사람의 한마디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결단의 문제처럼 돼버렸다.

무엇보다 정년이 70세에서 65세로 줄어드는 문제를 건너뛰었다. 보완책을 마련한다지만 현재 60세인 청소노동자가 5년이나 일찍 퇴출되는 상황을 해소할 방법은 없다. 국회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는 심리적 만족감과 약간의 처우 개선이 일할 수 있는 기회 5년을 대체할 수는 없다.

국회 청소노동자의 정규직화 이슈를 계기로 ‘청소사회’ 안에 숨어 있던 서열구조가 드러났다. 최근 한국은행 본부 이전으로 퇴사해야 했던 한은 청소노동자 19명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들보다 낮은 청소업계의 하층부에는 아파트와 상가 등 민간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주 6일씩 하루 8시간 일해도 월 120만 원을 벌기가 어렵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청소노동자의 정규직화가 자신의 업적이라고 내세우기 전에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따져 봤어야 했다. 올 1월 청소노동자에게 큰절을 하며 겸양의 정치인 이미지를 쌓은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이 이런 실상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 청소노동자가 가입한 환경미화노조는 현재 국회 사무처와 근로조건을 두고 교섭 중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당초 환경노조의 요구안이 72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근로시간 조정 문제 등이 핵심이다. 오래 참았으니 하고 싶은 말이 오죽 많겠나. 민감한 시기여서 김영숙 국회 환경노조위원장은 인터뷰도 사양했다. 청소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이 대폭 개선되기 바란다.

‘청소사회’에도 있는 서열

다만 그럴 경우 청소노동자 사회 안에서는 또 다른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이 생길 것이다. 분배체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가 끊이지 않고 나타나기 마련인 현실을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염두에 두길 바란다. 단칼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고 이 차별의 꼬리를 계속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게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청소노동자 비정규직#청소사회 서열#사회적 약자#기회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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