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의 모바일 칼럼]안에서 본 퀴어축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7일 03시 00분


누구나 학창시절에 ‘새침한 남자애’나 ‘걸걸한 여자애’와 한두 번은 맞닥뜨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라는 정체성의 평균에서 꽤 동떨어지게 생각했고 행동했다. 당시에는 “별난 아이도 다 있다”라고 뜨악해하면서도 그냥 넘긴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1969년 6월 28일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은 우발적 집단행동으로 시작됐다. 당시 게이클럽이었던 ‘스톤월 인(Stonewall Inn)’을 경찰이 급습하자 동성애자들은 다른 때와 달리 거칠게 맞섰다. 흩어지지 않고 주변에 몰려 있던 일부 동성애자들은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합창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들이 더 이상 박해받고 살지 않겠다고 폭발한 것이다.

이 싸움은 1년 뒤 같은 날 미국 최초의 ‘퀴어(Queer) 퍼레이드’로 발전했다. 지금은 성소수자들이 자기 존재를 알리는 지구촌 행사로 자리 잡았다. 퀴어는 괴상하거나 별나다는 뜻이지만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을 아우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종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종로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제 서울광장에서 제18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데도 100개가 넘는 홍보부스가 차려졌다. 대학별 성소수자모임은 물론 주한 외국대사관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부스를 열었다. 지나가다 잠시 지켜보니 염색해서 울긋불긋한 머리칼과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 꽤 많았다. 겉으로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외국인들도 적지 않게 참여했다.

펄펄 끓는 물 속 분자들의 움직임만큼이나 이들의 겉모습이나 행동은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로 이뤄진 무지개 표시였다. 성소수자의 상징이다. 중학생 때 교사의 불호령 아래서 매타작을 당할까 겁을 내며 오와 열을 맞춰 카드섹션을 했던 세대가 가슴으로 이해하긴 힘든 광경이었다.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에를 기독교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에를 기독교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같은 시각, 길 건너 대한문 앞에서는 보수 기독교인들이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로 맞불을 놓고 있었다.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손팻말이 보였다. 이들은 동성애를 치료해서 고쳐야 하는 잘못된 성향으로 여기며 음란이나 타락과 동일시했다. 차별금지나 인권보호라는 허울로 동성애를 감싸지도 말라고 요구했다. 애초에 신은 남녀를 구분해 세상을 만들었다는 관점에 따른 것이다.
사설/칼럼
20세기 초반부터 급속하게 발전한 유전자 연구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다양한 변이가 진화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변이도 도덕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우월하지 않다고 본다. 오직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런 틀에서 보면 퀴어축제 밑바탕에는 진화론이, 국민대회의 토대에는 당연히 창조론이 놓여 있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지 올해로 158년이 됐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거리는 아주 멀어보였다. 가까운 시일에 좁혀질 것 같지도 않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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