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어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사업자단체가 스스로 자신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면서도 “사업자단체가 자율기구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겪은 불행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부의 정책적 개입 의지를 드러냈다.
최고경영자(CEO) 대상의 조찬 간담회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발언은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재차 각인시키려는 메시지로 들린다. 대한상의가 회원사들의 경제력 집중 해소를 독려하지 않을 경우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돼 해체 위기에 내몰린 전경련처럼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회원사가 더 많은 법정 경제단체인 대한상의에 대해 ‘불행한 사태’ 운운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기업들에 ‘알아서 하라’고 지침을 주는 인상이 짙다.
김 위원장은 1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공판에 증인으로 나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각 이사회가 결정한 사안이 아닌 미래전략실에서 추진한 것”이라며 “증거를 댈 수 없지만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공정위원장인 그가 민간 기업 총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증거도 댈 수 없는 증언’을 한 것이 올바른 처신인지 논란이 있다. 심지어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대기업들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수시로 제공받았는데 삼성은 대화 채널이 없어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밝혔다. 재계에 ‘진작 잘했어야 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느낌이다.
후보자 시절 김 위원장은 인사 청문회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의) 상장사 규제 지분 기준인 30% 문턱을 넘지 않으려고 29.9%에 맞춰서 편법적으로 규제를 벗어난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을 준수하기 위해 대주주 지분을 줄인 것을 ‘편법’으로 규정한다면 공정위원장은 법 말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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