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가이드 별 3개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가도 아깝지 않은 식당’에 주어지는 최고 등급이다. 내게 권한이 있다면 속초라는 도시 전체에 별 3개를 주고 싶다. 그림 같은 동해 풍광은 논외로 하고 오로지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후회 없을 곳이라서다. 맛도 좋지만 식재료와 레시피가 다채로워 골라 먹는 즐거움이 크다. 어느 인류학자가 그랬다. 뭘 먹을지 고르는 행위는 선택권을 가졌다는 느낌, 자신감, 나아가 자유를 만끽하게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고.
그런 맥락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속초의 생선찜 식당을 찾은 건 나무랄 일만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코를 푸는 사진이 찍혀 “국민의 정계은퇴 요구에 코 푸는 꼴”이라고 욕을 먹었는데, 그가 찾은 ‘황가네찜’의 생선모둠찜은 걸쭉하게 끼얹은 양념이 은근하게 맵다. 땀과 콧물을 주체하기 어렵다. 매운맛은 스트레스 대응 물질인 엔도르핀을 분비시킨다. 머릿속이 복잡했을 안 전 대표로선 나름 적절한 메뉴 선택이었다.
이 집 모둠찜에 들어가는 생선 중 국내산은 도루묵뿐이다. 가자미는 미국, 갈치는 세네갈, 명태는 러시아, 가오리는 브라질에서 왔다. 고춧가루는 100% 중국산이다. 이런 사실을 곳곳에 필요 이상으로 큼직하게 써 붙여 놓았다. 원산지 조작, 절대 안 할 집이다. 콩나물 같은 걸 잔뜩 넣어 양을 조작하지도 않는다. 두툼한 생선들 말고는 약간의 무와 감자뿐이다. 뚝심, 정직함, 다국적 생선들의 조화로운 연합. ‘조작 노이로제’와 지역당 프레임에 갇힌 국민의당 당직자들이 단체로 다녀갔으면 싶다.
‘속초생대구’는 신선한 재료의 힘을 실감케 한다. 대구맑은탕이 처음엔 좀 심심한 듯하지만 먹을수록 대구탕 본연의 개운한 맛에 빠져든다. 칼칼한 대구매운탕이 메뉴에 없는 것은 이 집 대구가 워낙 싱싱해서일 것이다. 속풀이엔 매운탕보다 맑은탕이 제격이다. 자극적인 양념도 화려한 기교도 없다. 대구살, 미나리, 무, 마늘, 소금이 맛과 향의 전부다. 부드럽게 넘어가지만 그윽한 여운이 오래간다. 외유내강의 풍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추천한다. 꾸밈없는 본질은 최선의 마케팅 수단이다.
부드러움의 백미는 맑은탕에 들어가는 대구 애(간)와 달걀 물을 입혀 노릇하게 부쳐낸 이리(정소)전이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생크림처럼 녹아든다. 가시를 발라낸 대구살전도 촉촉하고 부드럽다. 이리전은 대구 산란기인 겨울 한정 메뉴라 지금은 맛볼 수 없으나 조바심 낼 건 없다. 정치 10단 김종필 전 총리가 “정치는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속초는 순대의 고장이다. 잠시 전란을 피했다 돌아올 요량으로 속초에 터를 잡은 함경도 실향민들이 아바이순대를 이곳 명물로 만들었다. 유서 깊은 음식이라 제대로 못 만들면 속초에서 순댓집 간판 내걸기 힘들다. 그런데 ‘속초진짜순대’는 함경도식 순대의 본고장 격인 속초에서 황해도(개성)식 순대로 차별화 전략을 편다. 강고하고 보수적인 음식에 다각적인 변화를 시도해 현지인은 물론 외지인으로까지 고객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벤치마킹을 권한다.
주인장에게 담백한 순대전골 맛의 비결을 물으니 “돼지 피를 안 넣어 누린내가 덜하고 찹쌀 대신 흑미, 참깨 대신 검은깨, 천일염의 10배 값인 해양심층수 소금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해 가게에서 직접 순대를 만든다”고 했다. 아바이순대를 김말이한 신세대형 순대를 개발한 것이나, 일식집에서 나오는 염교(락교), 생강초절임, 쌈무 등을 순대와 곁들여 먹게 한 것도 느끼한 맛을 잡아 고객층을 넓히려는 궁리의 결과다. 이 집이 자리한 중앙시장(속초관광수산시장)은 대구로 치면 홍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서문시장쯤 된다.
속초의 또 다른 명물인 물회는 전통의 ‘봉포머구리집’이 독주하는 가운데 몇몇 물회집이 치열한 2위권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그중 하나가 ‘삼해횟집’이다. 여느 물회집은 처음부터 회에 육수를 부어 나오는데, 이 집은 8가지 회를 가리비 껍데기에 담아 육수와 따로 내온다. 다양한 맛의 회를 즐긴 뒤 남은 회를 살얼음이 아삭거리는 구수한 된장 물회 육수에 빠뜨려 먹는다. 회들은 저마다 개성을 발휘하다가도 단합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주저 없이 물회 양푼으로 함께 뛰어들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낸다. 내부 결속이 최우선 과제일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맛봤으면 한다. 개복치라는 흔치 않은 심해 어종을 주메뉴로 개발한 것도 널리 숨은 인재를 구한다는 차원에서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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