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주 동안 머물렀던 집의 욕실은 보통의 아파트나 맨션과 엇비슷한 구조여서 창문이 없는 데다 좁은 편이었다. 집주인은 욕실에 곰팡이가 필까 봐 매일 밤 청소하고 선풍기를 틀어 실내를 말리고 세탁물, 그중에서도 수건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게 신경을 쓴다. 한 상점에 갔다가 가격도 괜찮고 품질도 좋아 보이는 수건이 눈에 띄기에 몇 장 사서 선물했다. 그 집 부부가 주고받는 말을 대충 들으니 우리나라의 송월타월쯤 되는 모양이었다. 아침이면 그 부부가 수건을 베란다에 널기 전에 먼저 탁탁 터는, 생활의 튼튼한 소리를 잠결에 들을 때가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더니 지난봄부터 집을 허물고 원룸을 짓기 시작한 앞집에는 아직 가림막이 처져 있고 우리 집 바로 뒷집은 이사를 갔다고 한다. 골목의 오래 살던 이웃들이 떠나고 그 자리엔 거의 모두 원룸이 들어서는 중이다. 만약 뒷집도 공사를 한다면 우리 집 옥상마저 가려질지 모른다. 집을 옮길 형편도 못 되고 마음도 없는 모친은 우리 집이 빨래 말리기가 얼마나 좋은데, 라고 종종 말한다. 마치 우리 집의 가장 큰 장점이 옥상인 것처럼.
놀러온 조카들이 그날 저녁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 말고 감탄하듯 “아, 햇볕 냄새!” 했다.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는 세탁물을 거실 창가에서 말린다. 조카들을 재우고 나니 다시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욕실에는 내일치의 빨래가 쌓였고 바닥 타일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비 오는 날 실내에서 말려서인지 수납장의 수건에서도 냄새가 나는 게 있고. 팔을 걷어붙이고 천장까지 핀 욕실 곰팡이를 솔로 문지르고 수건들을 팔팔 삶는다. ‘지하 봉천동’이라는 부제가 붙은 차창룡 시인의 곰팡이에 관한 시가 있다. “나도 몰래 벗이 된 이 있다네/소리없이 소리없이 찾아온 꽃이라네/향기 없는 향기 없는 냄새나는 꽃이라네/툭 털면 우수수 흩어질 것 같은/그러나 쉬 지워지지 않는 별자리라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일상의 즐거움을 다룬 것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을 하는 쾌락’과 ‘평범함의 쾌락’. 평범함의 쾌락에 관해서라면 이런 예를 들어도 될까. 하루 일을 마치고 마시는 차가운 맥주나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린 수건을 쓰는 즐거움. 폭우와 폭염, 습도를 견뎌내야 하는 여름은 특히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게 좋은 계절이 아닐까 싶다. 한밤중에 “쉬 지워지지 않는 별자리” 같은 욕실 곰팡이를 닦고 삶은 수건을 꼭 짜서 넌다. 요즘 같은 때는 잘 말린 수건 한 장만 있어도 하루의 시작이 괜찮다는 생각까지 든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비에 젖은 구두는 그늘에 말려 신어야 하듯, 일상의 작은 행운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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