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과학과 기술에 심대하게 의존하는 범세계적인 문명을 만들어버렸다. 한편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구조도 만들어버렸다. 당분간 버틸 수 있겠지만 조만간 이와 같은 발화성이 큰 ‘무지와 힘의 혼합물’은 우리의 목전에서 폭발해버릴 것이다.”
대중은 감성에 반응한다
신고리 5, 6호기 일시중단 파문을 보며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가 힘을 가질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를 예견한 ‘코스모스’의 작가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된다. 전기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고, 자동차 없이는 몇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며, 스마트폰 없이는 바보가 되는 사람들이 원전의 위험성과 미세먼지의 유해성과 스마트폰의 중독성을 비판하는 건 모순이다.
신고리 5, 6호기 영구중단은 공론화위원회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조사 실시, 시민패널단 구성 등 공론화 과정을 설계하는 일을 맡고 실제 결정은 시민패널단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원전 찬반에 대한 입장이 없다”고 했다. ‘입장 없음’이라는 대통령의 입장은 후보 시절 발언과 배치되지만 어쨌거나 정부가 결론을 정해놓고 공론화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탈핵으로 나아가려는 게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비전문가인 대중에게 정책 결정을 맡기는 것이다.
물론 여론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정책도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는 아니다. 우선 원자력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하는 분야라서 대중의 이해도에는 한계가 있다. 시민패널단에는 지역, 세대, 남녀별로 다양한 계층이 포함될 것이다. 원자력이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라는 정도야 알겠지만 부품만 200만 개라는 원전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논리보다는 감성에 반응하는 대중의 속성상 원자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제대로 된 공론조사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사적 개인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공적으로 토론에 부쳐 협의하는 것이 공론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공적 토론은 실종되고 공론장을 차지한 건 홍보와 광고이며 여론은 미디어가 독점했다는 게 하버마스의 비판이다. 즉, 공론은 현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상호간의 소통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공론은 여론과도 다르다. 원자력의 기술위험적 특성, 에너지 수급 전망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는 공론조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진 발생 가능성, 원전 중단 이후 전기요금 인상률, 대체에너지 수입에 따른 재정적자 전망 등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심도 있는 토론이 있은 다음에야 조사 결과가 신빙성을 가질 수 있다. 후쿠시마 사태나 지진 발생 이후 원자력 여론이 나빠지는 데서 보듯 여론은 움직이는 것이다.
결정은 ‘선출된 권력’이 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공론화위원회가 정당성(legitimacy)을 어디로부터 부여받았는가 하는 문제다. 대통령이 탈핵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5년짜리 단임 대통령이 국가 존망을 좌우할 중장기적 에너지 정책을 뒤집을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는데, 하물며 공론화위원회는 더욱 그렇다. 정당성 측면에서는 법적 근거가 없는 공론화위원회보다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결정하는 게 낫다. 그래야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책이 지속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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