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영화 ‘첨밀밀’(1996년)에서는 청춘의 운명적 사랑이야기와 감성적 음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영화 삽입곡 ‘첨밀밀(甛蜜蜜·꿀처럼 달콤한)’과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나의 마음을 대신하네)’은 대만 출신 가수 덩리쥔(1953∼1995)이 불렀던 노래다. 한국의 중장년팬들에겐 등려군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덩리쥔은 청아한 목소리로 달콤하고 애틋한 로맨스를 십분 살려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사회. 그 속에서 남녀 주인공을 맺어주는 인연의 고리로 가수 덩리쥔의 존재를 드러낸다. ‘홍콩 드림’을 좇아 본토에서 낯선 땅을 찾은 청춘남녀가 좋아하는 가수가 덩리쥔이었고, 10년 뒤 두 사람이 우연히 재회하게 된 것도 전파에서 흘러나온 그의 사망 소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가 1979년 발표한 ‘첨밀밀’이란 노래는 막 개방이 시작된 중국 대륙을 강타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중국 당국이 ‘정신 오염’을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했으나 인민들은 불법복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덩리쥔 노래를 들으면서 팍팍한 삶을 위로받았다. ‘낮에는 나이 든 덩 씨(덩샤오핑)가 지배하지만 밤에는 젊은 덩 씨(덩리쥔)가 지배한다’는 말이 유행한 것이 그 무렵이다. 덩리쥔은 사랑타령만 한 가수가 아니다. 1989년 톈안먼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발언을 했다. 이래저래 밉보인 탓에 생전에 중국 땅을 밟지 못했다.
▷중화권과 일본에서 최고스타였던 그는 한국에는 뒤늦게 알려졌지만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그의 삶을 다룬 ‘등려군: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가희(歌姬) 덩리쥔’이 나란히 출간됐다. 2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이 선정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화음악 100’에선 ‘러브스토리’를 제치고 당당히 7위를 차지했다.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을 리메이크한 노래들도 나왔다. 때마침 한국영상자료원은 26일부터 ‘첨밀밀’을 비롯해 홍콩의 걸작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노래 책 영화 등 덩리쥔을 만나는 세 가지 즐거움이 우리를 추억여행으로 초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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