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첫 전투헬기 수리온의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하성용 사장이 어제 사임했다. 18일엔 무기 품질의 최고책임자인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검찰은 부실덩어리로 드러난 수리온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들을 곧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하 사장은 헬기 등의 원가를 조작해 방사청에서 547억 원을 더 타내 비자금을 조성한 뒤 정치권에 연임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장 청장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수리온 헬기를 그대로 전력화한 혐의다. 군 수뇌부가 엔진 결함으로 추락사고까지 낸 헬기를 실전 배치한 것은 안보 구멍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 장병의 목숨조차 경시한 작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하자 바로 다음 날 검찰은 방산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KAI의 협력업체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는 정권 눈치 보기 식 늑장수사다. 감사원은 2015년 2월 하 사장의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의뢰했지만 검찰은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2012년 말 일선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한 수리온 헬기는 ‘국산 명품’이라는 군 자체 평가와 달리 엔진 과속 후 정지 등으로 최근까지 3차례나 추락 또는 비상착륙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수사 요청을 해놓고도 비행 안전성조차 갖추지 못한 수리온 헬기가 60대나 배치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해엔 수리온 헬기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중대한 기체 결함을 빼놓고 발표했다. 이런 부실 감사와 늑장수사 배경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이름이 거론된다. 박 전 대통령은 수리온 헬기를 신성장동력이자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며 감쌌고, 대통령민정수석실은 감사와 수사를 막았다는 것이다. 장 전 청장은 박 전 대통령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이다.
문제는 방산비리는 역대 정부가 집권 초기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군 장병의 생명과 안보를 담보로 하는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예비역 장성과 영관급 장교들이 방산업체에 취직하거나 자문에 응하면서 현역들과 ‘검은 끈’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방산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방산 요직에 앉는 현 정부의 인사들이 다음 정권 초기에 검찰에 불려가고 수감되는 불행한 사태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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