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공부문 16만 명 정규직 전환, 민간에까지 강요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0시 00분


정부가 어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전국 852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31만 명 가운데 향후 2년 이상 일할 인력 16만 명에 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의 자회사뿐 아니라 일부 민간위탁기관 등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된다. 공공부문의 새 일자리 가운데 상시적, 지속적인 업무는 모두 정규직으로 뽑도록 해 장기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연다는 방침이다.

양극화 해소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경제에 미칠 파장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우려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재원 마련이 걱정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31만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약 4조 원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은 “고용 안정을 우선으로 하고 처우 개선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예산이 얼마나 들어갈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기존 정규직 노조의 임금 인상 자제를 요구하겠다고 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선의(善意)에 의지해 추진한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청년 구직난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상당수 공기업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에도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채용 감소 걱정을 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폐기하기로 한 데 이어 정규직 전환에 따른 경영 압박이 불 보듯 뻔하다. 기관별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정책으로 공기업 개혁은 더욱 힘들어지고 국민 부담은 늘어날까 봐 걱정이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는 민간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다음 달에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발표한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을 늘리고 비정규직 사용 사유도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맡기는 것이 옳다. 민간을 과도하게 몰아붙이면 경영 부담이 커지고 궁극적으론 채용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절차에 따라 파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비정규직 제로 시대#청년 구직난#민간기업 정규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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