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를 배치하면 안 되는 이유도, 전교조를 합법화하는 명분도 ‘촛불혁명’이다. 내란선동죄인을 풀어줘야 하고, 자격 미달의 장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하는 까닭도 촛불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란다. 농민당에서는 ‘농업대개혁은 촛불혁명의 요구’라는 논평을 내놨다. 민노총은 “촛불 덕 본 정부에 노동자들은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정부는 원전 건설 중단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촛불정신 계승’을 내세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취임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촛불혁명이 정부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
진보 정부와 단체들이 억지 주장을 당당하게 하는 이유는 누적인원 1600만 명이 참가했던 2016년 촛불집회의 주역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 단체가 반미 구호를 내세워 주도했던 ‘효순이 미선이 사건’ 촛불집회(2002년), 광우병 집회(2008년), 한미 FTA 집회(2011년)와 2016년의 촛불은 달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공저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힘은 두 가지, 시민 집회의 힘과 보수 정부의 여당이 야당 주도의 탄핵 추진에 동참한 것”이라며 이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양손잡이 민주화’가 현실화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두 가지 힘 가운데 ‘시민 집회의 힘’만 따져도 진보가 온전히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힘들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팀이 여러 설문조사와 집회 참가자들의 면접조사를 망라해 펴낸 ‘탄핵 광장의 안과 밖’(책담)에 따르면 23.9%의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가했는데, 진보 성향의 사람들 중 참가 비율은 39.1%, ‘보수’ 17.3%, ‘중도’ 19.4%였다. 이들이 집회에 참가한 이유는 “정치적 냉소와 외면으로 어이없는 국정 농단 사태를 방치했다는 반성, 국민으로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이었다. 세대와 이념의 차이를 접어두고 사심 없이 한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겐 ‘촛불특혜’ ‘촛불청구서’ 운운하며 민원을 하는 것도, 외눈박이 정책을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면서 ‘촛불정부’를 마패처럼 내미는 것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촛불혁명이 이어받았다는 5·18민주화운동도 비슷한 홍역을 치렀다. 선거 때가 되면 ‘5·18 정신의 계승자는 누구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졌다. 광주비엔날레를 세계적 문화 행사로 키워낸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이 행사가 20주년을 맞은 2014년 물러나면서 “‘5·18 때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고 광주정신의 갑을 논쟁을 하는 이들이 있다. 광주정신을 사유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광주정신을 1980년대 광주에만 묶어두면 ‘광주정신의 세계화’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5·18이 광주만의 아픈 역사가 아니라 한국 민주화의 밑거름, 나아가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적 상징이 된 것은 광주 시민들의 희생과 함께 이를 기리고 실천하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했던 2016년의 촛불집회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4월 “서울시와 함께 촛불시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수상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촛불정신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삼아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무력화하는 마법의 지팡이로 휘두르려는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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