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주성원]가상화폐 열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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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투자가 유행했다. 네덜란드에 막 소개된 터키 원산의 튤립이 상류층에서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사겠다고 나서면서 튤립 가격이 급등했다. 일부 종자는 한 뿌리가 집 한 채와 맞먹을 만큼 값이 올랐다. 그러나 사겠다는 사람만 있고 팔겠다는 사람이 없는 거품은 3년 만에 터졌고 튤립 가격은 폭락했다. 이 여파로 네덜란드 경제까지 휘청거렸다.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17세기 ‘튤립 버블’에 빗대는 시각이 있다. 실제 쓰임새 대신에 막연한 기대 심리가 끌어올린 가치는 언젠가 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채굴’(컴퓨터로 복잡한 연산을 풀어 가상화폐를 얻는 과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만큼 유통 중인 가상화폐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예측이야 어찌 됐건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후에 호주 사업가 크레이그 라이트가 본인이라고 주장)가 비트코인을 만든 이후 가상화폐는 빠르게 영역을 넓혀왔다.

▷가상화폐는 실물 없이 디지털 세상에서만 유통되지만 때로 실제 화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독일과 일본은 비트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했고, 미국은 과세 가이드라인까지 정했다. 특히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하기로 해 주목된다. 일본 3대 전자제품 양판점 ‘빅 카메라’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비트코인 결제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한국에서 가상화폐는 아직 법과 제도 밖의 투기 상품이다. 사설 거래소의 비트코인 거래가 연간 1조 원 규모인데 법은커녕 아직 가상화폐를 어떻게 규정할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직원 PC가 해킹돼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탈취당했다. 가상화폐는 공개된 거래 명세를 사슬처럼 묶은 블록체인으로 관리돼 해킹이 어렵다. 그러나 거래소를 해킹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최근 국회에서 가상화폐 거래소를 인가제로 바꾸자는 법안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도 조만간 관련 규정을 정비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가상화폐#튤립 버블#비트코인#나카모토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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