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고소득자 증세에 웬 ‘명예과세’ ‘사랑과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5일 00시 00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는 증세 방안을 “‘명예과세’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부자들이 스스로 명예를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조세정의의 시금석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초우량기업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랑과세’, 부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존경과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 대표가 제안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추인한 증세계획을 정당화할 수 있는 네이밍(이름 짓기)에 여당 수뇌부가 나섰다.

당초 여권은 부유층에 국한된 세금임을 부각하며 ‘핀셋 증세’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조세저항이 걱정됐을 것이다. 특히 “한 해 쉬어가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 기반을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했다”는 김진표 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의 발언은 여권 내부에 팽배한 우려를 방증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증세에는 순서가 있다”며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을 한사코 맨 나중으로 돌렸지만 이번에 이 모든 절차를 건너뛰는 결정을 내렸다. 납세자와의 약속을 어기고도 과세 대상자의 명예를 위한다는 말은 궤변에 가깝다. 명예는 누가 억지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희생과 헌신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부자 증세는 대다수 서민·중산층에는 ‘남의 일’이어서 역대 정권이 세제개편 때마다 활용해온 손쉬운 재정 확충 방안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 프레임에 편승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정한 조세라면 명목세율 인상에 앞서 공평과세와 탈세방지 체계를 손보는 것이 먼저다. 실제로는 초(超)고소득을 올리면서 세금을 포탈하는 자영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증세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상위 1% 법인이 전체 법인세의 76%를 내는 반면 전체 기업의 47.1%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다. 세금을 걷기 쉬운 쪽에 더 많은 세금을 매기겠다는 발상이 정의로운가.

법인세를 높이면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이 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 결과다. 증세를 하면 경제 전반의 투자 및 소비 의욕이 감소해 궁극적으로 고용까지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다. 정부는 다음 달 2일 세제개편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런 점을 종합 검토해야 한다. 증세가 기업과 가계에 연쇄적으로 미치는 중장기 효과를 검증해 절충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단기 효과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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