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언어는 변하는 생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너무’ 사용법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문법 시험에 자주 등장하던 문제가 있다. 문장 오류를 찾는 이 문제에 따르면 아래 문장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너무 반갑게 인사하더라.

너무 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

예뻐도 너무 예쁜 소녀다.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말로 부정적 맥락에서 자주 쓰인다. 그러므로 ‘반갑다, 착하다, 예쁘다’ 같은 말과 어울리면 어색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더 이상 출제될 수 없다. 2015년 6월, 국립국어원에서 ‘너무’가 긍정적 용법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고 허용한 것이다.

문장 규칙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또 갑자기 ‘이런 문장도 허용된다’고 발표된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짜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언어 규범을 바꾼 것은 국립국어원이 아니라 우리말을 사용하는 우리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걸친 힘’이다. 어떤 의미인지 보자.

‘너무’는 ‘넘다’로부터 온 단어다. 어떤 수준을 지나치게 넘치는 것은 부정적이라 인식하던 관념에서 본다면 ‘너무’의 부정적 사용법이 이해된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면서 우리의 언어 사용 방식이 달라졌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 너무 착하다, 너무 반갑다’ 같은 문장을 많이 사용한 것이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너무’에 관련된 우리말의 용법을 바꾸게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의 사용법을 확인하고 그 긍정적 용법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너무’에만 한정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래 문장을 보자.

새로운 대책이 별로 신통치 않다.

위 문장 속 ‘별로’는 항상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나타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옛 문헌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도 가능했다.

별로 맛이 있다.


별로는 ‘특별’에 쓰인 한자 ‘별(別)’에 우리말 ‘로’가 붙은 단어다. 위 문장은 ‘특별히 맛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문장은 불가능하다. 원래 긍정, 부정의 의미로 쓰였던 ‘별로’가 부정적으로 더 많이 쓰이면서 용법이 변화된 것이다. ‘너무’가 부정적으로만 사용되다가 긍정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과는 정반대의 변화다.

언어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들 중에는 ‘너무’나 ‘별로’처럼 문장 속 쓰임이 변화한 것들도 많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 이전에 쓰던 말의 규범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어 정책의 목표는 쉬운 우리말, 편한 우리말, 나아가서는 품위 있는 우리말을 가꾸는 데에 있다 한다. ‘너무’의 긍정적 용법을 수용하게 된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여러 행동들 중의 하나다.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맞춤법#너무#별로#문장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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