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21세기 최대의 글로벌 성장 산업 가운데 하나다. 특히 한국은 가장 열성적인 해외여행 애호가들의 국가로 성장하고 있다. 전형적인 정착형 농업국가, 500여 년간의 방어형 대외정책 국가였던 한을 한꺼번에 풀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사실 우리도 모르게 유목민 DNA가 잠재되어 있던 것일까. 압도적 인구로 미국의 2배가 넘는 해외여행 소비를 하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면 2016년 기준 270억 달러를 지출하여 세계 7위권의 여행대국이 된 한국은 주목받을 만하다. 1억3000만 명의 인구대국 일본도 180억 달러 수준인데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휴가일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가운데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여행 기업 익스피디아가 28개국의 유급휴가 실태를 조사한 것을 보면 한국인은 평균 8일을 쓰고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의 한 달 유급휴가는 물론이고 호주(15일), 미국(12일)보다도 훨씬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 해외여행객은 2014년 1000만 명, 2015년 1300만 명, 2016년 1600만 명으로 해마다 20%씩 늘고 있다.
여행 패턴도 패키지 중심 여행에서 자유여행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현재 51 대 49 정도로 패키지여행이 우세하지만 곧 자유여행이 절반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국적인 문화와 유적, 자연 경관을 보고 즐기는 단계에서 직접적인 체험과 낯선 이들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시도하는 자기 주도적 여행의 경지로 올라서는 중이다.
해외여행이 빠르게 증가하다 보니 여행 적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국내 관광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적극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장기적 트렌드 또는 최근의 핫이슈인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사회생태계 변화를 고려하면 해외여행 적자 추세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른 이름은 초연결사회다. 개인,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국가적 정체성, 민족의식 같은 울타리를 계속해서 돌파해 버리는 것이 초연결사회다. 초연결 네트워크 때문에 장소성의 의미, 머무름과 떠남의 경계도 달라질 것이다. 일하고 먹고 놀고 관계를 맺는 데 머무름과 떠남이 공존하는 동시성의 글로벌 생태계가 강화될 것이다. 이 새로운 생태계가 일과 삶을 지배해 가기 때문에 다양성과 낯섦에 대한 개방적 사고의 중요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따라서 해외여행 적자는 단기적으로 불리할지 모르지만 초연결사회에 대한 간접적 경험을 쌓는 비용이자 투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은 끼리끼리의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왔다. 이제는 초연결사회의 낯설고 광대한 네트워크에서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해외여행 적자 추세, 경험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중시하는 자기 주도적 여행으로의 패턴 변화는 오히려 적절한 적응 절차라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유목민 DNA를 깨웠는데 다시 잠재울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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