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바쁘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귀촌 준비를 이민 준비처럼 시작했다. 언어, 문화, 화폐가치, 지켜야 할 매너까지 아예 다르기에 처음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시는 이사가 일상이다. 하지만 농촌은 태어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도시공동체와 성격이 같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또 언제든 직장을 옮길 수 있는 도시와는 달리 생활공간과 일의 공간이 같고, 거의 평생 한 직업을 유지하는 농촌은 서울과 문화도 다를 것이다. 한꺼번에 지역문화를 익히고 사람들과 친해지기는 어려울 터이니 귀촌 선배들에게 경험담을 들으며 참고했다.
귀농 첫 여덟 달 동안 귀촌자가 운영하는 농장에 딸려 있는 숙소에서 생활을 했다. 소소한 일을 도와주고 농작물을 얻어먹으면서 18년 귀촌 노하우를 들었다. 아랫집 아주머니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를 들었을 때는 신기했다. 그 아주머니는 조금 괴팍한 편인데도 귀촌인에게 마음을 여셨다. 노하우는 의외로 단순했다. 언제나 먼저 밝게 인사를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자주 도와주었다고 했다. 풀 관리가 어려운 시골에서 우리 집 풀을 깎으면서 아랫집 풀도 조금 깎아 준다거나, 우리 집 밭 ‘로타리를 칠’(밭을 간다는 뜻) 때 아랫집 밭도 함께 해주는 식이다. 도시의 관점에서는 좀 이상한 일이다. 마치 우리 집을 청소하면서 아랫집도 함께 청소해 주는 격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귀촌을 이민으로 봐야 한다. 더구나 시골이라고 모두 문화가 같은 것도 아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마을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다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귀촌 2년 차가 되니 어느 정도 알 듯도 하다. 이장님이 바뀌면 마을의 정책이 바뀌기도 하고,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대가 어떤지, 주로 어떤 농산물을 키우는지, 마을의 역사가 어떤지에 따라 정말 마을마다의 문화도 다르다. 무조건 ‘시골은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다행히 내가 사는 마을은 시골이지만 근처에 새 주택이 스무 채 정도 모여 있다. 주로 귀촌한 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마을 주민들에게 귀촌인이 낯설지 않다. 그 덕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귀촌할 때 무엇부터 준비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이민을 간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면 적당하다’라고 답해주고 싶다. 미국으로 가는 사람과 아프리카로 가는 사람은 준비해야 할 것이 전혀 다르다. 어디로 귀촌을 하는지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다면 뭐라 말해 줄 것이 없다. 굳이 묻는다면 어느 정도 그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일 자세를 가진다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서혜림
※필자는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2015년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여 농사짓지 않는 청년들의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를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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