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5일 페이스북을 통해 방송 강연을 책으로 펴낸 ‘명견만리’를 언급하면서 “사회 변화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겪어보지 않은 세상이 밀려오고 있는 지금, 명견만리(明見萬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글과 함께 일독을 권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대통령의 권유 뒤 이 책의 주말 판매량은 한 주 전보다 25배나 늘었다. 교보문고에서도 같은 책의 하루 판매량이 이전 평균치의 10배를 넘었다. 문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아이템(상품), 이른바 ‘문템’이 새롭게 등장한 셈이다. 문템의 목록은 안경테부터 시작해 등산복과 구두, 넥타이, 심지어 ‘문라테(문재인+카페라테)’까지 다양하다.
언행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빨간 야구모자도 대표적인 대통령 상품의 하나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 모자는 후보 시절부터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의 상징이었다. 그는 연설이 끝나면 모자를 지지자들에게 던지며 유세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모자와 티셔츠 등을 판매한 수익금이 600만 달러(약 67억4400만 원) 규모로 후원금의 6%에 이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 특별한 상품이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5월 취임식 때 입은 기성복이 화제였다. 이 옷은 파리의 남성복 가게 ‘조나스 에 콩파니’에서 구입한 것으로 450유로(약 55만 원) 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런 상품들의 인기는 대통령의 지지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자신 소유의 골프클럽에서 머물고 있는 트럼프는 휴가가 아니라 ‘일하는 중’이라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 5월 대선에서 66%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마크롱도 주요 여론조사에서 뚜렷한 하향세다.
문템의 인기는 이들과 달리 70%가 넘는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템과 별개로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여러 곡절이 숨어 있다. 주요 현안에 관한 발언은 당연지사이고, 현 상황에 대한 비유는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뗏목론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선거 전 일은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대선이라는) 큰 강을 건넜으니 뗏목은 이제 잊어버리자”고 했다.
불가(佛家)에서는 뗏목의 비유가 자주 등장한다. 사벌등안(捨筏登岸), 말 그대로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진리조차 집착하고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흥미롭게도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뗏목론을 앞세운 조언들이 적지 않았다. 호소력 있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인 현장 화법과 열광적인 팬클럽을 연상시키는 지지자 그룹 등이 버려야 할 뗏목으로 지목됐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이번엔 문 대통령 스스로 뗏목론을 언급한 것이다. 대통령의 의중에는 무엇이 뗏목이고, 어느 시점에 버려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들어있을 것이다.
이제 흘러간 영화가 된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었다. 하지만 ‘정치적 사랑’은 “당연히 변한다”는 게 정답이다. 변덕스러운 세상인심에 관계없이 문템의 유통기한이 정말 길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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