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71>책의 광복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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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1945년에 태어난 사람을 해방둥이라 일컫기도 한다. 해방둥이 작가로는 소설가 최인호, 시인 나태주, 이해인 등이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김승옥(1941년생), 중국 만주에서 태어난 황석영(1943년생)은 광복 이후 1945년 우리 땅을 처음 밟았다. 책과 문학작품에도 해방둥이가 있다. 광복 후 최초 시집은 1945년 9월에 나온 영문학자 이태환(1908∼1974)의 시집 ‘조선미(朝鮮美)’이다.

12월에는 좌우 이념 차이를 뛰어넘어 정인보, 홍명희, 정지용, 김기림, 조지훈, 임화 등 문인 24명의 시가 실린 ‘해방기념시집’이 나왔다. 홍명희가 수록 시 ‘눈물 섞인 노래’ 첫 부분에서 외친다. ‘독립만세 독립만세 천둥인 듯 산천이 다 울린다. 지동인 듯 땅덩이가 다 흔들린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라도 꿈만 같다. 아이도 뛰며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만세.’

문학평론가·소설가 김남천은 1945년 10월 15일부터 이듬해 6월 28일까지 ‘자유신문’에 장편소설 ‘1945년 8·15’를 연재했다. 화가 이인성의 삽화와 함께 연재되다 중단된 이 작품의 배경은 광복 직후 시기다. 연재 예고에 실린 작가의 말이 당시의 혼란상을 증언한다. “남쪽 북쪽이 갈리고 정당이 45개나 생기고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떠들어대고,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머리가 뒤숭숭하다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해방둥이 출판사로는 1945년 12월 1일 창립된 을유문화사와 12월 25일 건국공론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현암사가 대표적이다. 1945년 말까지 45개 출판사가 군정당국에 새로 등록했다. 광복 직후 종이는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조선양지배급회사 창고에 쌓인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교과서와 신문용지로 먼저 배정되고 남은 종이가 출판사 몫이었다. 대부분 책에 ‘임시정가’ 표시를 하고 도장으로 새 정가를 수시로 바꿔 찍었다. 종이 값이 며칠마다 크게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출판사 창업을 고민하던 정진숙(1912∼2008·을유문화사 창업주)에게 위당 정인보가 한 권고가 그 시절의 출판 정신을 증언한다.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과 글을 다시 소생시키는 데 36년이 더 걸릴 것이므로, 우리 문화를 되찾는 일을 하는 출판사업은 애국하는 길이자 민족문화의 밑거름이다.”

광복은 우리말과 글, 문화, 그리고 책의 광복이기도 하였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광복절#해방둥이 출판사#을유문화사#책의 광복#시집 조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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