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원한다지만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 다당제를 위한 선거법 개정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최근 발족한 여야 정개특위 소속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하소연이다.
사실 뭔가 이상하다.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무한 대치가 석연치 않다. 민주당은 승리한 정당이고 대통령은 협치를 내걸고 당선됐는데 너무 공격적이다.
민주당이 강조하는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전(前) 정부도 아닌 전전(前前) 정부에서 벌어진 일까지 왜 저렇게 공개적으로 파고들며 긴장을 고조시키나 싶다. 특히 지금은 100대 국정과제 입법화 등 야당의 협력이 절실한 때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뭔가 다른 계산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당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야당이 순순히 여당을 따라갈 순 없다. 그러나 과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외골수 투쟁이다. 당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져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요지부동이다. 왜 그럴까?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각각의 이유로 긴장 고조를 통한 양당·양강 정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의 복원, 적폐 청산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과 동력 확보 및 대야 협상의 간소화를, 한국당은 당의 재건과 야권이 가진 힘의 근원인 ‘비토(veto)권’ 독점을 위해 각각 노선이 비슷한 3, 4당의 존재감을 지우려는 듯하다.
원래 소선거구제는 제도 자체의 특성과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 등으로 양당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유명한 뒤베르제의 법칙이다. 이를 잘 아는 민주당과 한국당은 수십 년 동안 양당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켜 지지층의 결집을 꾀하고 제3세력의 의회 진입을 견제해 왔다. ‘적대적 공생’이다. 몇 번의 대선을 앞두고 통일국민당(정주영), 자유민주연합(김종필), 국민의당(안철수) 등 대선후보 중심의 정당이 창당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다당제가 정립하지 못한 이유다.
문제는 양당 구도야말로 그들에게만 익숙한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라는 점이다. 지지층의 분노 또는 공포로부터 더 강한 생명력을 얻는 양당 구조에서 정치 품질과 대안 경쟁은 의미가 없다. 모든 사안은 당파적 이해로만 인식된다. 더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열성적이지만 편향된 지지층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타협보다는 지지 정당이 권력을 쟁취해 자신들의 적(수구우파 또는 친북좌파)을 청산해주기를 원할 뿐이다.
결국 상대의 실패가 나의 기회가 되는 구도 속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야당은 내심 대통령과 여당의 실패를 바랄 수밖에 없다.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유럽 국가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타협’이나 ‘협치’는 꿈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당이 결사반대했던 노동개혁 입법을 문재인 정부가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추진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며 다당제의 기반이 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한 선거법 개정에 적극 찬성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치러졌다면 국회 1당은 새누리당, 2당은 국민의당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지난 총선을 앞두고 약속했던 다당제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국 정치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도, 정체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도 정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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