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요즘 이 말이 거의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안된 개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모두 ‘개념의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혁명’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의식에 경종을 울립니다. 위기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혁명적 개념’을 다른 것 다 제치고 자기 일상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에 바로 접목시킵니다. 즉,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새로 생길 것인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직업은 곧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대하는 태도에 ‘호들갑’은 있는데 ‘알맹이’는 없다는 자성의 소리도 나올 법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겠지요. 새로운 현상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방법론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닙니다. 사물을 보는 합리적인 관점 같은 것 말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주로 ‘대체’의 관점에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등장하면서 기존의 삶에 필요한 여러 ‘작업’을 넘어 ‘직업’을 대체한다고 말합니다. 서비스업에서 법률, 행정, 의료 분야까지도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상을 대체가 아니라 공존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은 공존의 지혜가 현실적이며 그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직업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로봇과 공존하는 직업으로 ‘가지치기 진화’를 할 겁니다.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공존의 구체적 모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결국 ‘인공지능 주도 자동화’ 정책은 이 모형들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역사적 공존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말 자체가 통시적으로 앞서 있었던 역사를 전제하며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초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인류의 문명을 농업단계인 제1의 물결, 산업단계인 제2의 물결, 그리고 디지털 문명의 도래에 따른 제3의 물결이라는 3단계로 나눈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구분과 제3의 물결이라는 개념의 ‘과다함’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토플러가 주장한 것은 제3의 물결이 아니라 제2의 물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1만3000여 년 전에 시작해 일상적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된 농업은 제1의 물결이라 할 만합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도 제2의 물결에 걸맞은 혁명이라고 할 만합니다. 짧은 글에서 세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아직 제2의 물결을 타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주창한다는 것은 현재 문명이 제2의 물결 위에 있음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4차 산업혁명은 없고 ‘산업혁명의 4번째 단계’가 있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이는 현재의 변화를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의 중심에 있는 단어, 즉 ‘산업(industry)’의 의미에서부터 다시금 차분히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의 전문가들에게 더 필요한 시사점일지 모릅니다. 철학 없는 혁명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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