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고려대 도서관이 발행하는 소식지 제목에 도서관 측이 새로 만든 한자가 등장했다. 소식지에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워낙 자주 나오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한자 책(冊)과 에워쌀 위(口)를 조합해 도서관을 뜻하는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 썼던 것. 글자 모양만 보면 ‘고대책보(高大冊報)’ 비슷했지만 읽을 때는 ‘고대도서관보’로 읽었다.
책이라는 한자는 죽간이나 목간을 끈으로 꿰어놓은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공자는 수레를 타고 가다가 공문서 운반하는 사람을 만나면 수레 위에서 예를 표했다. 나랏일을 중시하는 태도도 태도지만, 죽간이나 목간을 꿴 무거운 책 더미를 지고 가는 사람의 수고를 생각한 것이다. 많은 책을 뜻할 때 책 수레 끄는 소가 땀을 흘리고 쌓으면 대들보에 닿는다는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말을 쓰곤 하였다. 이때 책을 죽간과 목간이라 본다면 요즘 기준으로는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전(典)이라는 한자는 책을 손으로 받치거나 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다. 책 가운데서도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을 손으로 받치거나 상 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읽는다. 예컨대 경전은 삶과 세상의 기본 이치를 담고 있으며 법전은 사회 질서의 기본이 되고, 자전(字典)은 문자 생활의 기본이다. 서(書)라는 한자는 말한다는 왈(曰)과 손으로 잡은 붓을 나타낸 율(聿)이 합쳐졌다. 말하는 것을 붓으로 기록하여 만든 것이 책이다. 대나무로 붓대를 만들었으니 대죽(竹) 머리를 더하여 붓 필(筆)이 되었다.
오늘날 책 수를 셀 때 쓰는 권(卷)은 발음이 같고 모양도 비슷한 승차권의 권(券)과 혼동하기 쉽다. 책을 뜻하는 권에는 접고 말아서 갈무리한다는 의미가 있어 둘둘 말아두는 문서를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두루마리 책을 권자본(卷子本)이라 한다.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책 한 벌을 뜻하는 질(帙)도 권자본과 상관있다. 권자본을 일정 단위로 묶어 보관하기 위해, 대나무로 엮은 발이나 헝겊 등으로 포장한 것이 질이다.
이처럼 책을 뜻하는 말들에는 책과 독서의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다. 죽간을 꿴 책을 둘둘 말아 두었다가 펼쳐 읽던 먼 옛날과, 클릭하고 터치하며 디지털 전자책을 읽는 오늘날의 차이는 기술 측면에서는 크다. 하지만 인간이 ‘읽는 인간’, 즉 호모 레겐스(Homo Legens)가 되었던 첫 순간부터 읽는다는 것의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