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른 큰키나무 측백(側柏)나무는 아주 오래 사는 나무다. 중국 산시(陝西)성 황링(黃陵)현 동쪽의 차오산(橋山)산에 위치한 황제릉(黃帝陵) 앞의 측백나무는 수령 5000년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동구 도동의 측백나무의 나이는 200년 정도다. 측백나무의 이름 중 ‘백(白)’은 도깨비 뿔 같은 돌기가 달린 열매에서 본뜬 글자이고, ‘측’은 다른 나무들이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측백나무만 서쪽으로 향해 있어서 붙인 것이다. 측백나무가 서쪽으로 향한 것은 ‘백’이 오행에서 서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측백나무는 중국의 황허(黃河)강 유역을 대표하는 나무다. 현재 베이징 이허위안(이和園), 톈탄(天壇)을 비롯해 황허강 유역에는 나이 많은 측백나무가 아주 많다. 중국인들은 측백나무를 ‘성인(聖人)’의 기운을 받은 나무라 생각했다. 중국 북송의 왕안석(王安石)은 측백나무의 한자 백(柏) 중 ‘백(白)’을 백작(伯爵)으로 풀이했다. 그래서 중국 주나라 때 측백나무를 제후(諸侯)의 무덤에 심었으며, 한나라 무제는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당나라 무제는 대부(大夫)에 비유했다. 중국 허난(河南)성 쑹산(嵩山)산 자락의 쑹양(嵩陽)서원에는 한나라 무제가 장군으로 임명한 4500년 된 측백나무가 살고 있다.
측백나무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 기록은 ‘논어·자한’의 ‘날씨가 추운 뒤에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나중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이다. 추사 김정희는 논어의 구절을 모방한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송백의 ‘백’을 측백나무가 아닌 잣나무로 오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의 문헌에 등장하는 ‘백’은 잣나무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서 유의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례를 ‘문화변용’이라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장수를 원한다. 그런데 장수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측백나무처럼 장수하기 위해서는 나이를 옆으로 먹어야 한다. 대부분의 나무는 줄기를 위로 뻗는 반면 나이테는 옆으로 만든다. 나무가 나이테를 옆으로 만드는 것은 수직 상승만으로는 균형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는 종횡무진의 균형 잡힌 삶을 통해 장수한다. 사람들은 나이를 수직으로만 계산하는 데 익숙하지만, 나이테처럼 나이를 수평으로 생각하면 훨씬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