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00일과 언론 책임
허니문이라도 安保는 양보 안돼…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야
‘살충제 계란’ 표현 혐오감… ‘살충제 잔류 계란’이 어떨지
《 문재인 정부는 직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출범한 첫 사례다. 그런 만큼 집권 초부터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환호하는 지지자도 많지만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도 적지 않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문재인 정부 100일과 언론 책임’을 주제로 토론했다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탈원전 선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공무원 증원, 살충제 계란 파동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동아일보가 이런 이슈들을 제대로 보도했는지 짚어봤으면 합니다.
김종빈 위원장=국가적 문제와 관련해 국민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로 출범한 독자위원회를 통해 국민이 하고 싶어 하는 얘기를 대변하고, 정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통해 언론문화 발전에도 기여하면 좋겠습니다.
조화순 위원=동아일보가 대통령의 탈권위와 실천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에 대한 심도 있는 평가가 부족했고 어떻게 내실 있게 구현할지에 대한 분석은 적어 아쉬웠습니다.
신용묵 위원=100일은 5년 임기의 18분의 1에 불과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이 100일을 평가할 때 좀더 입체적이고 큰 틀에서 들여다봐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취재의 품질을 높여야 정치의 품질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준웅 위원=이 정부에서도 인사 문제가 불거질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해서인지 그에 대한 언론의 분석과 비판이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정부의 인재풀과 인사의 방향성 같은 것을 분석적 심층적으로 다뤄줬으면 합니다. 류재천 위원=너그럽게 봐 100일을 허니문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안보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것인 만큼 보수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데 동아일보가 좀 약한 듯 보였습니다. 김광현 위원=현 정부는 초기에 매일 1면 톱거리의 이슈들을 쏟아냈습니다.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수위 없이 출범한 정부이고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비판하더라도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일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문재인 정부가 권력을 친근한 이미지로 만든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통은 퇴보했던 것 같습니다. 소통을 내세운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구하거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한 일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소통을 한다고 했지만 형식에 머물렀다는 느낌입니다. 원전 문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류 위원=화두를 던지고 그 이후 결정을 해야 하는데, 원전 문제는 (탈원전이란) 결정을 한 뒤 화두를 던져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셈입니다. 이런 잘못된 맥락을 마땅히 짚어줬어야 합니다. 김 위원=“원전 중단 결정, 단 세 마디 회의로 끝냈다”는 본보 기사(7월 12일자)는 절차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짚은 것으로, 언론계에서 원전 문제를 다루는 데 기폭제가 됐다고 봅니다. 류 위원=그 보도는 좋았지만, 탈원전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해서 국민이 관심을 갖도록 계속 화두를 던져야 합니다.
김 위원장=탈원전이 시행되면 전기료가 안 오를까 궁금했습니다. 그런 것이 국민이 갖는 관심 아닐까요. 하지만 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조 위원=정부가 소통을 내걸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책은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으니 같은 편끼리의 소통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는데 형식만 국민 참여라는 꼼수를 부린 거 아닌가요.
이 위원=에너지 문제는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 성장 환경 세대와 연관된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공론화위원회가 제대로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하고, 국민이 지식 기반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도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언론이 해야 할 일은 부적절한 절차를 지적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역할입니다. 이제 최저임금과 일자리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신 위원=선진국의 경우 최저임금은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틀에 들어가 있지 못해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생계적 측면에서만 다루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에 대한 올바른 논의가 진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위원=최저임금을 포함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선 전문가들까지 포함해 찬반 입장이 다양합니다. 장기적으로도 정말 좋은 일인지,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닌지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 심층 보도해야 합니다.
조 위원=문재인 정부가 던지는 경제 인권 환경 등의 화두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좋은 이슈들입니다. 다만 수레가 굴러가는데 돌 뿌리고 자갈 뿌려서 천천히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그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절차에 맞게 순리대로 행해지는지를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국민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데도 동의를 생략하거나 무시하는 등 절차 위반 부분을 감시해야 합니다. 옳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과정이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면 옳지 못한 일입니다.
조 위원=탕평인사라고 하려면 탕평의 혜택을 받는 야당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총리의 역할이 없는 것 같고, 국회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를 지적하는 보도가 부족했습니다. 김 위원장=문재인 정부 100일 관련 내용 말고도 어떤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까. 신 위원=대통령과 재계 간담회 보도(7월 28일자)는 거의 속기록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향후 간담회가 가져올 과제 목적 기대효과에 대한 보도 비중이 너무 작아 아쉬웠습니다. 이 위원=“계란 내일부터 안심하고 드세요”라는 기사(8월 17일자)는 독자들의 궁금증에 딱 맞는 접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면 이 말을 한 사람이 전문가가 아닌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더군요. 전문가의 견해를 제시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류 위원=모든 언론에서 ‘살충제 계란’이라고 쓰는데 혐오감을 조장하는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동아일보만이라도 ‘살충제 잔류 계란’이라고 정확하게 쓸 것을 제안합니다.
조 위원=한명숙 전 국무총리 출소 기사(8월 24일자)를 보면, 출소 자체를 큰 사건으로 다뤄서 마치 대법원 판결을 무색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진(이순진 전 합참의장) 형님에 해외여행 깜짝 선물’(8월 21일자) 기사는 과연 1면에서 다뤄야 할 내용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위원=연해주 ‘독립운동가 기념비’ 훼손 관련 기사(8월 14일자)는 좋은 발굴 기사입니다. 그러나 보훈처에 대한 비판 내용도 포함돼 있는데 러시아에 있는, 민간 사업자가 만든 사적지까지 보훈처가 관할하라는 것은 지나친 지적일 수도 있습니다. 김 위원장=대법원장 관련 기사는 제목이 ‘서열 파괴 대법원장 후보’(8월 22일자)였습니다. 그런데 국민은 법관들 서열이 뭔지 잘 모릅니다. 이분이 대법원장이 됐을 때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더 비중 있게 다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진보 성향 대법원장 후보’가 더 적합하고 전달이 쉬웠을 겁니다. 국민 생활과 정책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인사에 대해서는 국민의 관심에 입각해 보도해야 합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손유경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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