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수진]‘노트르담 드 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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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Cit´e)섬은 파리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파리’란 이름도 시테의 켈트족(族) 원주민 ‘파리지(Parisii)’에서 따왔다. 프랑스 왕국이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한 뒤 로마의 식민지배 때 세워진 시테의 주피터 신전은 무너졌고, 그 터엔 대성당이 들어섰다. 노트르담이다. ‘우리의(Notre)’와 ‘귀부인(Dame)’이란 두 단어가 합쳐져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1163년부터 192년간 지어진 노트르담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1455년)이 열린 곳도, 신교도였던 앙리 4세와 구교도였던 마르그리트 왕녀의 정략 결혼식(1572년)이 치러진 곳도 노트르담이었다. 그러나 종교보다 이성이 중시된 1789년 대혁명 때는 수난을 겪었다. 3개의 성당 출입문 위 일렬로 늘어선 28개의 성경 속 유대 왕 입상(立像)과 종(鐘)이 모조리 끌어내려져 산산조각이 났다. 폐허가 됐다. 1804년 나폴레옹 1세는 ‘황제 대관식’을 위해 내부 벽에 급히 회칠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잊혀졌던 노트르담을 재조명한 것은 1831년 출간된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일명 ‘노틀담의 꼽추’)였다. 노트르담을 무대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와 꼽추 종지기 콰지모도가 펼친 슬픈 사랑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의 가치를 일깨웠다. 소설의 대흥행에 힘입어 노트르담은 1844∼1870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는 복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작물도 덧붙였다. 박쥐 날개와 용의 머리를 한 괴물 ‘가고일(Gargoyle)’ 조각상을 각기 다른 포즈로 만들어 외벽 곳곳의 비죽비죽 튀어나온 빗물받이 위에 얹은 것.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음산한 노트르담과 콰지모도의 기괴한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노트르담이 전면 보수 공사를 위해 1억 유로(약 1345억 원) 목표의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노트르담 측은 “가고일과 고딕 양식의 아치형 구조물이 바스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고가 ‘돌의 거대한 교향악’이라고 표현했던 노트르담. 147년 만의 재단장은 어떻게 될지….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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