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공약 ‘작은 靑’ 어느새 큰 청와대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7일 00시 00분


정부의 중장기 발전 정책·전략을 개발하겠다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신설된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에 학계의 대표적 친문(친문재인)계 인사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5일 위촉됐다. 문 대통령의 취임 직후 대통령 ‘업무지시 1호’로 설치된 일자리위원회를 신호탄으로 정책기획위원회, 4차산업혁명위원회, 국가교육회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등 출범했거나 출범을 앞둔 위원회만 벌써 8개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 기존 위원회는 대통령이 장(長)의 역할을 맡는 식으로 기능이 강화되고 규모가 커졌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장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면서 ‘낮은 청와대’를 지향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도 “‘작은 청와대’ 구상에 따라 각 부처에 힘을 싣겠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개편에서 정책실장이란 장관급이 한 자리 더 늘었고, 장관급 위원장 자리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거꾸로 장관들은 현안에서 실종됐다. 세제(稅制)가 주 업무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가 뒤집히면서 유감 표명까지 해야 했다. 안보 부처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정보를 틀어쥐고 외교부 장관과도 공유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외교부 패싱’이란 용어가 오르내린다.

문 대통령의 공약은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임기 초반부터 대통령과 정부 부처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공룡처럼 비대해지고 특정 라인이 대통령의 귀를 막으면서 장관이 대통령에게 대면(對面) 보고를 했는지가 뉴스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도 구중궁궐에서 군림하는 것 같은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에서 나왔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청와대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한 청와대가 부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면 공직 사회는 청와대에만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땅에 납작 엎드려 눈만 굴리게 된다. 관가의 복지안동(伏地眼動)식 무기력증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겨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대선공약#문재인 대선공약#업무지시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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