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전문기자의 사진 속 인생]흑백의 매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8일 03시 00분


이종승. ‘전봇대’. 2015년
이종승. ‘전봇대’. 2015년
영화 ‘국제시장’으로 명성을 얻은 부산 국제시장에 흑백 사진관이 생겨 이제는 국제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1960,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장에 흑백필름을 써 촬영하고 직접 인화까지 해주는 사진관이 더해졌으니 창의적인 ‘복고(復古) 마케팅’이라 할 만하다. 사진관은 사람이 몰려 예약 없이는 사진 찍기가 힘들다고 한다. 흑백사진이 추억과 회상을 앞세워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1980년대 말 사진기자가 됐을 때 처음 했던 일은 흑백필름을 감는 일이었다. 암백에 100ft짜리 코닥 흑백필름을 로더기에 장착하는 게 필름 감는 것의 첫 번째 단계다. 선배들의 시범을 따라 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 다음 일은 찍은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롤에 다시 감는 일이었다. 암실에 혼자 들어가 필름을 스테인리스 롤에 감는 것은 많은 실수 끝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롤에 감긴 것을 시간 맞춰 현상을 하고 필름을 꺼내 세척과 건조 과정을 거쳐 인화기에 건 후 인화를 해야 비로소 흑백사진이 나왔고 보도사진이 돼 지면에 실렸다. 이 과정에서 노출이 안 맞거나 색조가 맞지 않은 사진들은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흑백사진을 얻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사람은 사진작가와 사진관 주인밖에 없다. 일반인들이 흑백사진에서 향수와 추억을 느끼기 위해 직접 만들려고 덤볐다간 그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테니 사진관을 찾아가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비용 탓인지 흑백사진을 직접 찍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필름 카메라로 디지털 카메라로는 느끼지 못하는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이도 늘고 있다. 복고가 통하는 이유 중 하나가 빠름과 변화에 지친 심리를 위무하려는 것도 있으니 이해할 만한 흐름이다.

디지털 카메라로도 얼마든지 흑백사진의 맛과 정취를 낼 수 있다. 촬영할 때 흑백모드로 하거나 컬러로 촬영한 후 포토샵이나 이미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흑백으로 전환시키면 흑백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미지 프로그램을 다루기 힘든 중년들은 아예 처음부터 흑백모드로 촬영해 보는 것도 괜찮다. 같은 장면을 한 장은 컬러로, 한 장은 흑백으로 찍어 컬러가 어떻게 흑백으로 재현되는지 감을 익히는 것도 공부가 된다. 더 확실하게 흑백에 대한 감을 얻으려면 흑과 백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밤 풍경을 촬영해 보길 권한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흑백필름#흑백사진의 맛#복고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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