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가족’이라는 이름의 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9일 03시 00분


<46>배리 매닐로(Barry Manilow)의 ‘Ships’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제가 농담이라고 한 말 때문에 절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하여간 저는 아직도 바보짓을 너무 많이 합니다. 진료실에서는 말로 용서할 수 없는 상처를 줬던 친가, 시댁 식구들을 다시 만나야 하는 걱정과 분노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갑니다. 벌써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노래는 우호적이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낭만적인 광고 음악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가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부자간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고향 부모님 집을 찾아갑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해변을 함께 산책하다가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손을 잡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린 밤바다에 스쳐 지나가는 두 척의 배 같구나. 멀리서 손을 흔들며 잘 있었냐고 인사만 나누는…. 우린 이제 낯선 사람들 같아. 우린 너무 멀어졌고, 너의 소식은 네가 편지를 해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가와 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들이 아버지를 간절히 필요로 할 때 밀어냈었죠. 아들이 잘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노력이 아들에게는 오히려 깊은 상처가 되었죠. 아들은 이제 와 손을 내미는 아버지가 불편할 뿐입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니 더더욱 불편합니다. 다가가고 싶지만, 또한 다가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들은 사랑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 쉽다고 혼잣말을 합니다.

어렸을 적 가장 의존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깊이 각인되어 오래갑니다. 어릴 적의 상처는 뇌의 회로를 왜곡된 방식으로 배선시키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과다하게 발달시키기 때문이죠. 그 상처의 극복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능하죠. 가능하니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있는 것입니다.

명절 때에는 족보상으론 가깝지만 친밀하지는 않은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별생각 없이, 혹은 좋은 의도로 한 이야기가 상대방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죠. 어디에 어떤 지뢰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더 취약합니다. 그 가족에서는 약자니까요.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인터넷을 뒤져서 각 연령대와 처지가 명절 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의 순위를 찾아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추석 때에는 친절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려 노력하고, 의뢰하지 않는 이상 제 의견을 먼저 말하지 않고, 의뢰해도 최소한 세 번은 숙고한 후에 조심스럽게 말하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어도 건설적이고 상대방을 위하는 방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나보다 어떻게 말하나가 더 중요할 때가 많죠. 정말 꼭 해야 하는 이야기라면 세련되고 재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능력이 별로 없고, 저희 가족 중엔 저보다 현명한 사람이 더 많죠.

이 노래의 아들은 결국 이제 약해진 아버지의 손을 잡아줬을까요?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분노가 있겠지만, 사랑도 있으니까요.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배리 매닐로#barry manilow#ships#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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