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재소장 첫 인준 부결, 文정부 겸허하라는 民意 경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0시 00분


임명동의안이 제출된 지 111일 만에 표결에 부쳐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어제 부결됐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1988년 9월 헌재 창설 이후 처음이다. 올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이후 7개월 넘게 이어지는 헌재 소장 공백 사태는 당분간 지속되게 됐다.

김 후보자는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이석기 전 의원이 주도한 통진당은 북한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국가 기간 시설을 타격하자는 모의를 한 사실이 대법원에서 인정됐는데도 김 후보자는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명백하게 헌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추종한 정당인데도 면죄부를 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5월 25일 국회에 보낸 임명동의 요청서에서 ‘통진당 해산 반대’ 등을 지명 이유로 꼽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판결도 문제가 있었다. 김 후보자는 시민군을 태워준 버스 운전사에게 사형을, 공수부대 진압군의 폭력적 행태에 부대를 이탈한 방위병 166명에게는 모두 징역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했다. 독재정권 때는 그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고, 민주당 추천 헌재 재판관이 돼서는 또 그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린 김 후보자가 대통령 탄핵까지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수장감이 아니라는 공감대는 일찍이 형성됐다.

무엇보다 김 후보자 낙마는 출범 4개월을 갓 넘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의(民意)의 경고다. 후보자의 비리 의혹엔 눈을 감고 ‘코드’만 맞는다면 중책을 맡기다 벌어진 인사 난맥과 사법권력 교체 기도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했다. 청와대는 “무책임의 극치” 같은 극한 표현으로 야당 탓을 하기보다는 반성하는 게 먼저다. 이번 부결에서 확인됐듯,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협치가 필수적이다. 문 대통령부터 몸을 낮춰 협치에 앞장서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헌재는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다. 문 대통령은 헌재소장 후임자 지명을 서두르길 바란다.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감안하면 지명부터 임명까지는 최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감’이 되는 중립적 인사를 지명해 하루빨리 헌재 공백 사태를 해소해야 할 것이다.
#헌재소장 부결#김이수#임명동의안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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