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내년 서울 초등교사 임용시험 선발 인원을 당초 예고 인원(105명)보다 대폭 늘린 385명으로 발표한 13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직접 브리핑룸 단상에 섰다. 그는 “시험 준비에 매진해야 할 시간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수험생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크다”고 사과했다.
조 교육감을 오랫동안 보좌한 측근이나 단체협상에 나섰던 노조 관계자나 ‘90도 폴더’ 인사를 받은 교사나 모두 한결같이 “그는 선하다”고 한다. 교육감으로서, 선생님이 되려고 어렵게 교대에 입학하고도 ‘임용절벽’ 앞에 선 교대생들을 매정하게 외면할 수 없었을 터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선의에 고개가 선뜻 끄덕여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일이 또 있다.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 부지의 특수학교 설립 논란이 번지자 조 교육감은 라디오에 나와 “(한방병원과 특수학교를) 반반(半半)씩 지을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가 “검토한 바 없다”고 바로 부인했지만 강서구민과 특수학교 부모의 표를 ‘반반’이라고 계산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시교육청은 한방병원 부지를 내어 줄 권한이 없다. 오히려 양측의 갈등만 증폭시킬 발언이었음은 물론이다. 조 교육감은 7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특수학교 설립에 주민 반발도 심하고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도 듣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교육권을 위해 특수학교 설립만은 미루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의 초심을 배반한 땜질 증원 결정이나 특수학교 ‘반반’ 생각은 ‘정치적 선의’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시교육청은 부쩍 교원단체나 학교 비정규직 노조, 교대생 등 특정 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6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표심 잡기’와 무관치 않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교육계 관계자는 “정당 추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는 후보가 난립하다 보니 20% 안팎의 득표율에서 당락이 갈린다”며 “조 교육감이 ‘조직’의 마음만 잡으면 재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늘어난다고 아이가 더 태어날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딱 서울교대 졸업생만큼 선발 인원을 늘렸다. 곧 더욱 가파른 임용절벽이 찾아올 게 분명한데도 폭탄 돌리기를 한 거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교대청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들린다.
‘조직되지 않은’ 일반 국민은 교사 증원에 분노한다. 정부가 실패한 교원 수급 정책의 대가를 세금을 내는 국민이 치르게 생겼다. 이런 정치적 결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투표권이 없는 학생일 것이다. 교사 인건비와 연금을 대느라 고정비용이 늘어나면 학교 시설 투자부터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조 교육감이 교사 증원이 아니라 특수학교 설립에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면 대다수 국민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을 게 분명하다.
장기적인 계획과 효과 분석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 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으로 왜곡되는 일은 수도 없이 보았다. 교육 정책은 타협이나 절충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 6월 당선 직후 조 교육감은 한 인터뷰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함부로 조령모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초심대로 ‘백년지대계’를 이야기해야 표심이 응답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