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의학적 진단을 거스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내 몸이라고 해서 유전자로 인한 질병도 내가 알 수 있을까?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어릴 때부터 장내 염증으로 100건 이상의 수술을 받았던 아이가 유전체 검사로 진짜 원인을 알아낸 사례가 나온다. 이 사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을 유전체 의학으로 해결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우주처럼 너무 큰 것도 볼 수 없고, 유전자처럼 너무 작은 것도 알 수 없다. 인간의 감각적 인지능력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계에 대해서나 그나마 부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현대 의학의 트렌드적 방향을 관찰해보면 예방, 맞춤화, 참여라는 3가지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3가지 키워드가 모두 의학이 데이터 과학이 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첨단의학으로서 유전체 정보를 활용하는 국내의 벤처 기업 사례들은 이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
‘싸이퍼롬’은 내 몸과 약물의 궁합을 예측해 적합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의 경우 간단한 진단 키트로 약을 먹기 전에 미리 안전한지, 약이 잘 맞을지를 알 수 있는 예방 서비스다. 예방을 잘하려면 내 몸에 대한 유전체 데이터가 필요하다. 또 맞춤화에도 필수적인 것이 데이터다. ‘이원다이애그노믹스’의 ‘마이지놈박스’라는 앱은 알츠하이머병, 관상동맥 등의 질환뿐만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와인이나 내 식탐 유형까지 분석해준다. 내 몸이 제공한 데이터 덕분에 더 철저한 맞춤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의학이 데이터 과학이 되려면 내 몸의 데이터를 자기 의지로 제공해야 하는 참여가 필수적이다.
‘쓰리빌리언’은 침(타액)을 요구한다. 준비된 키트에 담아 우편으로 보내면 4∼8주 후 4000여 개의 희귀 유전질환을 진단한 결과를 보내준다. 인류는 2003년 30억 개에 달하는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지도를 완성했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다른 생체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 기보를 데이터화해서 공부했다면 유전체에 기반을 둔 의학은 우리 몸이 가진 빅데이터를 재료로 공부해야 한다.
통계에서 보듯 개인에게 맞춤화한 의약품은 2008년 이전에는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국내 벤처들 이외에 수십 개의 글로벌 바이오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불과 3년 후면 유전자 분석 시장만 13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현대 의학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분야는 데이터 과학과의 융합에서 출현하며 4차 산업혁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성장 방향이 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후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내 몸에 대한 빅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빅데이터는 나의 외부에 만들어진 두 번째 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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