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 오후 8시 방송3사의 대선 출구조사가 나올 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부인, 딸과 함께 있었다. 그때까지 대통령이 되는 줄 알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던 안철수는 예상이 빗나간 출구조사 결과에 무척 당혹해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질 게 뻔한 선거였는데도 그는 최종 승자가 될 것을 확신했던 모양이다. 투표를 불과 1주일 남겨두고 경쟁 후보들이 대규모 유세전에 열 올릴 때도 전국 주요 도시를 걸어 다니며 ‘뚜벅이 유세’에 나선 것도 안철수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선거운동이었다. 막판에 표몰이를 못해도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결단을 막을 수 있는 참모는 없었다.
대선캠프 해단식 날 그를 도왔던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회 사무실에 마련된 조촐한 행사엔 2만 원짜리 점심 뷔페가 나왔다. 대선 때 고생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치곤 소박한 상차림이었다. ‘갑부 안철수’가 너무 짠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정작 안철수는 못 들은 것 같다. 아무리 ‘새정치’라고 해도 베푸는 데 인색한 정치인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MB아바타’ 한마디에 몰락
국민의당 대선평가보고서는 안철수의 모호한 중도성과 대중성, TV토론 전략의 실패를 패착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TV토론에서 “내가 MB아바탑니까”라며 뜬금없이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던진 질문이 결정적 패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안철수가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알았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안철수는 MB아바타’라고 네거티브 선전을 한다는 얘기가 들리던 때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MB아바타 얘기를 하는 바람에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안철수가 왜 저러는지 궁금해 했다. “왜 민주당이 나에 대한 흑색선전을 야비하게 하느냐”며 한마디도 못하고 안철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불만을 대신했다. 그의 표정에서 행간을 읽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락세를 그린 지지율은 회복되지 못했다. 의학도 공학도인 안철수의 한계를 보는 듯했다. 보통 정치인에게는 차고 넘치는 정무감각을 그에게선 찾기 어렵다.
안철수의 내공은 대화에 있다
안철수가 정치를 시작한지 2년이 되던 무렵 그와 개인적으로 식사하면서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1년 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과 후보단일화 하는 과정에서 각인된 우유부단한 모습은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공정거래위원회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는 말투에선 간단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안철수에겐 볼 수 없던 진정성을 그와 대화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대중연설에 능하고 토론도 잘하는 반면 안철수를 알려면 직접 만나서 대화해 봐야 알 수 있다.
안철수 정치 5년이 남긴 것
2012년 9월 19일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가 오늘 정치에 입문한지 5년을 맞는다. 2009년 MBC ‘무릎팍 도사’가 히트 치고 2011년 전국 25개 도시를 돌면서 진행된 ‘청춘콘서트’에서 사람들은 새 정치의 희망을 안철수에게 봤다. 그동안 툭하면 빠진다는 ‘철수정치’에서부터 간만 본다는 ‘간철수’ 안철수바람인 ‘안풍(安風)’에 이어 지난 대선에선 목소리를 확 바꿔 ‘강철수’ 이미지에 ‘독철수(독한 철수)’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TV쇼나 이벤트가 아니었음을 절감했을 것이다. 한때 정계은퇴 압박까지 받은 안철수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며 여의도를 흔들고 있다. 호남에서 영남으로, 그리고 충청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그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난 5년이 마치 20년은 흐른 것 같다”는 안철수의 토로는 의사나 컴퓨터사업가 교수보다 정치인이 가장 힘들었다는 말로 들린다. 여의도정치의 이단아 안철수는 한국 정치의 소중한 자산임에도 여전히 그에게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철수가 하고 싶은 정치가 어떤 것인지 더욱 선명해져야 안철수의 길도 열릴 것이다. 그것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새정치는 더 이상 안철수의 브랜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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