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북핵, 체제 보장용”… 13년 전 盧 파문 발언과 같아
역대 대통령 가장 큰 실패는 안보·경제·국민통합·인사 정책
文, 닥쳐온 안보 실패 덫 피하고 편 가르기·보복정치 삼가며
레임덕 막을 개헌 서둘러야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다. 이 발언은 2004년 1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파문을 일으켰던 발언과 사실상 같다. 노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핵과 미사일이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전에 발표문을 알게 된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윤병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은 누구보다 발언의 폭발력을 잘 알았다. 심지어 ‘자주파’로 불리는 NSC 관계자도 파장을 우려했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노 대통령은 소신대로 하고야 말았다.
13년이 지난 뒤 문 대통령의 발언에 파문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발언한 때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기도 전이었다. 그때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가 초미의 관심이었지만, 이미 핵보유국 문턱을 넘어선 터에 개발 의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아직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임기 초인 데다 이미 북핵과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나 많은 얘기를 쏟아내 묻혀버린 측면도 있다.
비단 북한 문제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4개월여 만에 경제·사회 전반에 수많은 정책과 어젠다를 던져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이용해 사회 전반의 이른바 ‘주류세력 교체’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서두른다는 감을 주지만, 노무현의 실패와 비극적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문 대통령은 알 것이다. 5년 단임 대통령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돌아보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누구 할 것 없이 엄청난 박수와 환호 속에 당선돼 일이 손에 잡힐 만하면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국회에 발목이 잡혀 휘청거리다 막판에는 가족 또는 측근 비리,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본인 비리로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주술(呪術)이라도 걸린 듯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전직들의 실패를 들여다봐야 한다. 측근 비리 같은 주변의 실패는 걷어내고 본인의 가장 큰 실패를 살펴보자. 김영삼은 외환위기를 불렀고, 김대중은 햇볕정책의 ‘대북 퍼주기’로 북핵 개발의 토양을 제공했다. 노무현은 편 가르기와 이념 갈등, 이명박은 양극화 심화를 들 수 있다. 박근혜는 제왕적 국정 운영과 인사 실패다. 다시 요약하면 안보와 경제의 정책 실패, 국민 통합 실패, 자기 관리와 인사 실패로 정리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첫째, 안보 실패의 덫을 피해야 한다. 전직들의 실패가 응축된 탓이기도 하지만, 안보 실패의 폭탄은 자칫 문 대통령 임기에 터질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전술핵이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든, 공격무기든 방어무기든 우리의 무기 곳간을 든든히 채워 북과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게 급선무다. 무기가 실제 효과가 없다느니, 주변국의 반발을 부른다느니 하는 말은 야당 지도자면 몰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군 통수권자의 언어는 아니다. ‘대화와 제재의 병행’이라는 현 시점과 맞지 않는 옷도 벗어던져야 한다. 국민도 북한과 대화를 원하지만 두들겨 맞을까 봐 벌벌 떨며 하는 대화는 바라지 않는다. 전쟁이 두렵지만 인질이 될 생각은 없다.
둘째, 경제는 두말이 필요 없다. ‘양극화 해소’니 뭐니 아무리 분식(粉飾)하고 포장해도 국민들은 경제가 좋은지 나쁜지 피부로 느낀다. 당장의 복지가 달콤하지만, 지속 가능한 복지가 되려면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 공공 일자리를 늘려봐야 일부 또는 한시적 혜택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을 키워줘야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양산(量産)될 것이다.
셋째, 문재인 정부의 편 가르기는 벌써 위험신호를 울리고 있다. 정권을 잡았으니 ‘코드 인사’를 하는 건 다소 용인한다고 치자. 하지만 전임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MB) 정부에까지 보복의 칼을 겨누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다. MB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 친노(친노무현)의 구원(舊怨)은 안다. 그래도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려는 것은 국격(國格)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넷째, 이 모든 걸 잘 해내도 집권 3년 차부터 스멀스멀 찾아오는 필연적 레임덕은 대통령을 실패로 몰아간다. 권력구조를 바꿀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이 약속한 내년 6월 개헌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도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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