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궁하면 통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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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궁화

‘끝없이 핀다’는 뜻을 가진 무궁화. 역경 속에서 살아남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끝없이 핀다’는 뜻을 가진 무궁화. 역경 속에서 살아남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아욱과의 갈잎떨기나무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나라꽃(國花·국화)이다. 193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00년경이다.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은 것은 오래전부터 무궁화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 산해경(山海經) ‘해경(海經)·해외동경(海外東經)’의 ‘군자국(君子國)에 훈화초(薰華草)가 있다’는 내용은 우리나라 무궁화에 대한 첫 기록이다.

산해경에 등장하는 훈화초는 무궁화의 다른 이름이다. 무궁화의 다른 이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목근(木槿) 혹은 근수(槿樹)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에서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무궁화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궁(無窮) 즉, ‘끝없이 핀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무궁(無宮) 즉, ‘옛날 임금이 이 꽃을 사랑했으나 궁중에는 없다’는 뜻이다.

무궁화의 꽃은 배롱나무의 꽃처럼 100일 정도 핀다. 그러나 한 송이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 무궁화 꽃의 이러한 특성은 무궁화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궁화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은 무궁화의 조개모락(朝開暮落)을 쉽게 변하는 조령모개(朝令暮改)에, 무궁화 꽃의 진딧물을 쉽게 공격당하는 대상에 비유했다. 무궁화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은 통꽃에서 단결과 협동심을, 여름철 한 그루에서 100여 일간 3000송이 이상 피는 꽃에서 인내와 끈기 및 진취성을 부여했다.

현재 무궁화는 종류만 200종 이상일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무궁화는 꽃잎의 형태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의 3종류로, 꽃잎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의 3종류로 구분한다.

나는 무궁화의 정신을 ‘무궁’의 철학에서 찾는다. 특히 무궁화의 ‘무궁(無窮)’은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太極旗)와 관련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무궁은 ‘무극(無極)’의 의미이고, 무극은 곧 태극을 뜻한다. 무극과 태극은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周敦이)가 ‘태극도설’ 첫 문장에서 언급한 대로 만물을 창조하는 원리다. 따라서 무궁화도 만물을 창조하는 원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틈에서도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무궁화의 정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서 언급한 대로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가기(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때문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무궁화#갈잎떨기나무#대한민국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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