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63>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과 김란사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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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 1918년 설치됐고 6·25전쟁 때 부서진 뒤 2003년 복원됐다.
서울 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 1918년 설치됐고 6·25전쟁 때 부서진 뒤 2003년 복원됐다.
정동야행. 매년 봄가을 밤, 서울 중구 정동길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정동야행이 열리면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해금 연주가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벧엘예배당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것은 1918년. 우리나라 첫 파이프오르간이었다. 이것을 설치한 사람은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1872∼1919)였다. 그는 1894년 스물둘의 나이에 이화학당에 지원했다. 하지만 결혼했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김란사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선 어머니의 교육이 중요하다”며 수차례 간청했고 1895년 이화학당은 결국 그의 입학을 받아들였다. 이후 김란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의 교사가 되었다. 여기서 유관순을 만났고, “조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달라”며 유관순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김란사는 1916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감리교 총회에 한국의 평신도 대표로 참석했다. 그때 미국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알게 되었다. 이화학당 옆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이 생각났다. 곧바로 미국에 있는 동포들에게 호소문을 보냈고 모금을 위한 순회강연을 열었다. 스스로 100달러를 내놓았고, 1400달러의 기금을 마련해 파이프오르간을 구입했다. 그런데 운반이 문제였다. 운반비 500달러를 더 마련해야 했다. 1918년 벧엘예배당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고 그 기념으로 김란사는 직접 연주했다. 국내 첫 파이프오르간 연주였다.

벧엘예배당의 파이프오르간 송풍실은 아래쪽 지하에 있다. 일제강점기 이 송풍실에선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등사했다. 지하 송풍실은 입구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제일교회 청년을 비롯해 교회 옆 이화학당 배재학당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3·1운동 독립선언서, 지하 독립신문 등을 몰래 제작하곤 했다.

김란사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참석차 베이징에 들렀다 동포가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30여 년 뒤, 6·25전쟁 때엔 폭격으로 파이프오르간이 파괴되었다. 멀어졌던 파이프오르간은 2003년 복원되었다. 김란사의 꿈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올가을 열리는 정동야행에선 아쉽게도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정동제일교회 수리 공사 때문이다. 그 대신, 서울 정독도서관 앞 서울교육박물관에 가면 작은 전시를 통해 김란사의 꿈을 만날 수 있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정동제일교회#파이프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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