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어제 국회에서 가결 정족수보다 10표 많은 160표로 임명동의를 받았다. 사법부 수장의 공백 없이 24일 임기가 만료되는 양승태 대법원장 뒤를 잇게 돼 다행이다. 여야 표 대결이 극심했던 것을 감안하면 무난하게 통과한 셈이다. 김 후보자는 임명동의 과정에서 불거진 이념적 편향에 대한 일각의 우려부터 불식시켜야 한다. 그래야 복잡한 분쟁과 정치적 사건을 공정하게 엄정 중립의 자세로 처리하는 사법부 수장의 책무를 다할 수 있다.
김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대법관 후보자 10명을 제청한다. 막중한 권한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대통령과 뜻이 다르더라도 제청권을 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 헌법재판관에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이유정 변호사 등 진보 성향 법률가를 지명했다. 두 사람은 국회에서 동의가 부결되거나 검증 과정에서 숱한 의혹이 불거져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대통령과 성향이 같다거나 우리법연구회, 민변 출신이라고 우대해서는 안 된다.
법원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높다. 김 후보자는 “전관예우 때문에 불공정 재판이 있다는 국민의 우려를 없애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국민이 원하는 사법개혁은 전관예우와 같은 고질적인 병폐를 없애 재판의 신뢰를 회복하라는 것이지 전국법관회의가 주장하는 판사 승진 제도 폐지나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가 아니다. 법원 조직의 안정을 위해 인사 적체 불만도 해소해야겠지만 당면한 개혁의 우선순위는 사법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법원의 문턱을 낮추고 공정한 재판으로 사법부 신뢰를 높이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58세인 김 후보자는 대법원장으로선 상대적으로 젊다. 자신의 경륜 부족을 인정하고 조언을 구하는 열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평생 재판만 한 이력을 바탕으로 법원행정처 비대화와 조직의 관료화를 깨고 ‘제왕적 대법원장’에게 집중됐던 인사권의 분산 등 제도 개혁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사법 위기’의 핵심은 재판 불신이다. 재판의 독립성은 보장돼야 하지만 판결을 통해 편향적 소신을 관철하려는 ‘사법 개혁’은 용납되기 어렵다. ‘재판이 정치’라는 그릇된 신념을 지닌 법관의 재판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사법부는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고 심판 기능의 마비는 사회 혼돈으로 귀결된다. 사법부는 헌법정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 권력과 여론 양쪽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김 후보자가 사법부를 이념 대결을 넘어 법과 양식이 승리하는 정의로운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길이고 사법부 수장이 직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