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끝날 때/나는 말하고 싶다/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평생 나는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메리 올리버의 시 ‘죽음이 찾아오면’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삶만큼이나 죽음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이제부터 내리막임을 눈치 챈 후부터였을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쇠락은 물론이고, 사회적 성취나 경제적 상황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은 건강한 무릎도 곧 삐거덕거릴 것이며 구멍 난 스펀지처럼 엉성한 기억력은 구멍이 점점 커질 것이다.
더 이상 무언가를 이루어낼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고요히 늙어갈 일만 남았다고 담담히 인정한다. 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여행을 하고, 여행에 관한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새벽 산책으로 하루를 열며 평생을 살아온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는 “내 시들은 모두 야외에서, 들판, 해변, 하늘 아래서 쓰였다”고 고백했다.
내 삶도, 내가 쓰는 잡문도 그러하다. 밥을 벌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나는 배낭을 메고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하고, 9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를 걸어야 하고, 인류가 건설하고 파괴한 온갖 것들 앞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다. 내가 쓰는 글과 내 육체 사이에 기만이나 거짓이 끼어들 수 없다는 것. 내가 몸을 움직인 만큼만 쓸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편협하고 완고한 세계를 사랑한다.
몸을 움직여갈수록 이 세계는 나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답을 찾아갈수록 나는 이 세계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올리버의 말처럼 나는 그 두 개의 능력에 기대어 살아왔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그 불빛에 의지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때로 불길은 지나치게 타올라 나와 내 주변의 이들을 다치게도 했다.
결국 집도, 남편도, 아이도 없는 ‘삼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후회는 조금도 없다. 이 길을 선택한 이후 하루하루가 모험이 아닌 날이 없었고, 그 불안정한 자유 속에서 나는 살아있는 것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내 마지막은 객사 혹은 고독사가 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객지에서의 고독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평생토록 길 위의 생을 갈구해온 이에게 그 이상 어울리는 죽음이 있을까.
죽음의 방식에 대해 생각할수록 ‘자유 죽음’을 택하고 싶다는 열망도 커져간다.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타인의 손길에 맡긴 채 병동에 무기력하게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내가 마지막으로 여행할 세계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이기에 제대로 해내고 싶다. 자발적인 의지와 기꺼운 마음으로 이 세계와 작별하고 싶다. 평생을 경이로움 속에서 살아온 내가 이제는 죽음이라는 놀라운 세계로 뛰어든다고 선언하면서! 그 무렵에는 우리에게도 ‘자유 죽음’이 허락되어 스위스까지 가지 않아도 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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