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가톨릭은 성인(聖人) 추대 과정에서 후보자의 결함을 찾아내는 ‘악마의 변호인(Advocatus diaboli)’을 임명했다. ‘악역’을 맡은 이 신부는 후보자가 행하였다는 기적이 사실은 사기였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1587년 교황 식스토 5세가 오판을 막기 위해 고안했다. 조직 내에 의도적인 반대자를 두는 제도는 여기서 유래했다.
▷‘내부 반대자’를 두는 것은 동양에도 오랜 역사가 있다. 조선 세종은 국가대사를 결정할 때면 허조(許稠)와 ‘끝장 토론’을 벌였다. 매양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는 그를 고집불통이라 불편해하면서도 지적을 참고해 정책을 보완했다. 중국 최고 통치자로 꼽히는 당 태종의 옆에는 쓴소리쟁이 위징(魏徵)이 있었다. “녹대의 화려한 옷을 불사르라” “아방궁을 버리라” 등 거침없는 간언에 태종은 때론 위징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야단을 맞을까 봐” 여러 계획을 포기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10번째 남자’ 제도를 두고 있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욤 키푸르 전쟁을 예측하지 못했던 국방부는 10명 중 9명이 동의해도 1명은 반드시 반대해야 하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경험이 많으면서도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뛰어난 인재들 중 선발한다. 이스라엘의 교훈은 비즈니스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매몰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라는 점이다.
▷대검찰청이 특별수사에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치적 논란이 일기 쉬운 특수부 사건 수사에 공판부 소속 검사를 투입해 검사 아닌 변호인 입장에서 본 지적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1997년에 나온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은 거대 로펌에 스카우트된 시골 출신 변호사가 출세를 위해서는 증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일도 서슴지 않다가 파멸하는 꿈을 꾼 뒤 진정한 법조인으로 거듭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국 검찰판 데블스 애드버킷은 검찰이 거듭나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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