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부드러워야 강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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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왕버들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 강인한 나무 왕버들.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 강인한 나무 왕버들.
버드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왕버들은 버드나무 중에서 줄기가 굵고 오래 살아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버드나무 40여 종 가운데 왕버들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왕버들을 의미하는 한자는 귀류(鬼柳)다. 왕버들은 오래 살면 줄기의 일부가 썩어서 큰 구멍이 생긴다. 어두운 밤에 이 구멍에서 종종 불이 비친다. 비 오는 밤에 불빛이 더욱 빛난다. 이는 목재 안의 인 성분 때문이다. 조상들은 이것을 ‘귀신불’이라 불렀다.

왕버들을 포함한 버드나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왕버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버드나무 학명에 등장하는 살릭스(Salix)는 ‘가깝다’를 의미하는 켈트어 ‘살(sal)’과 ‘물’을 의미하는 ‘리스(lis)’의 합성어다. 그래서 왕버들은 대부분 물가에서 볼 수 있다. 경북 청송군 주산지의 왕버들은 물속에서 산다. 경북 성주군의 성밖숲은 우리나라에서 왕버들이 가장 많은 숲이며 59그루가 천연기념물이다. 더욱이 성밖숲의 왕버들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 숲이 부족한 것을 돋우는 비보(裨補)의 성격을 가진 데 비해 좋지 않은 기운을 누르는 염승(厭勝)의 성격을 띠고 있다.

왕버들의 또 다른 특징은 부드러움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면 상주의 지팡이를 버드나무 혹은 오동나무로 만들었다. 왕버들이 부드러운 것은 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은 음양사상에서 부드러운 여성성을 가진 음을 의미한다. 음은 양에 비해 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인 물은 양인 쇠를 자를 만큼 강하다. 왕버들은 가지가 부드러워서 잘 부러지지만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버드나무는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 강인한 나무로 소개하고 있다. 전통시대에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준 것도 강인한 버드나무처럼 살아서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부드러운 버드나무는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는 벽사력((벽,피)邪力)을 지니고 있었다.

왕버들을 포함한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유승강(柔勝强)’의 정신은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쥔 양류관음(楊柳觀音)이 세상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듯이 세상의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워야 세상의 오물도 제거할 수 있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왕버들#나무 왕버들#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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