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윗물이 맑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선 태종 때 가뭄이 오래 지속되었다. 태종이 “아무리 금주령을 내려도 술을 마시는 자들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이는 내가 술을 끊지 않아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雖下禁酒之令, 飮酒者不止. 是予不斷酒之使然也)” 하면서 술을 올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자 나라 안에 감히 술을 마시는 자가 없었다.

세종이 술을 경계하면서 “비록 나라를 염려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는가? 배웠다는 대신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항간의 백성들이야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송사(訟事)가 대부분 여기에서 나오니, 처음부터 삼가지 않으면 끝에 나타날 폐단이 참으로 두렵다” 하였다. 또 가뭄을 걱정하여 전국에 금주령을 내리고 오랫동안 약주를 드시지 않은 적이 있었다. 재상 이직(李稷)이 드시기를 청하자, 세종은 “남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나 홀로 마신다면 그것이 옳겠는가(禁人飮酒, 而予獨飮, 可乎)” 하였다.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10권 ‘법령(法令)’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가뭄으로 금주령을 내리고 임금께서 앞장서 지키니 백성들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윗사람이 더 어려운 법 아닐까요.

효종이 술 취한 태묘(太廟)의 제관(祭官)을 경계하여 “내가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가 있을 적에 술잔을 가까이한 일이 많았으나, 세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일절 끊어 버렸다. 저 사람이 만약 엄숙하고 공경하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잠깐 동안 마시지 않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였다. 또 신하들에게 “크게는 천하 국가, 작게는 개인 한 몸을 망치는 것이 대부분 술에서 비롯된다(大而天下國家, 小而匹夫一身喪亡, 多出於酒). 벼슬을 맡은 사람이야 참으로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실언이 또한 화를 부르게 되니, 어느 것이 이보다 해롭겠는가. 근래에 사대부로서 명류(名流)라 일컬어지는 자들이 술 마시는 것을 가지고 서로 떠받드니, 이와 같은 부류는 관직의 후보로 올릴 때 다른 사람 앞에 두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굳이 애주가들과 시비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이런 자들을 관직에서 배제하라는 효종의 정책이, 음주운전에 관대하고 그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과 대비되어 놀라울 뿐입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선 태종#세종#이유원#임하필기#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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