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과 ‘숟가락’ 표기가 어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ㅅ’과 ‘ㄷ’의 불일치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적어도 한 부분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관계 깊은 단어의 짝에 주목하고 그 차이를 궁금해한 것이니까. 맞춤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질문인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젓가락’부터 보자. 이 ‘ㅅ’은 사이시옷이다. 앞서 배웠던 사이시옷 표기의 조건부터 확인하자. 먼저, 단어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우리말인가? ‘가락’이 우리말이다. 다음, 발음이 ‘ㅅ’을 요구하는가? 발음 ‘까락’에서 ‘가락’의 ‘ㄱ’이 된소리로 되면 ‘ㅅ’을 넣는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저’와 ‘가락’ 사이에 ㅅ이 표기된 것이다.
사이시옷은 ‘∼의’의 의미였다. ‘머릿속’이 ‘머리의 속’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그렇다면 젓가락은 ‘저의 가락’인 것일까? 실제로 그렇다. 물론 현재 ‘저’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가 우리 옛말임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지시하는 말인 ‘수저’의 ‘저’를 보자. ‘저’가 ‘젓가락’의 의미라는 것이 금방 확인된다.
‘젓가락’은 ‘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그럼, ‘숟가락’은 어떻게 된 것일까? ‘수저’와 숟가락과 젓가락의 관계를 본다면 이 단어도 ‘숫가락’(×)으로 표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
―밥을 한술도 먹지 못했다.
‘술’은 숟가락의 옛말로 오늘날에는 분량을 세는 단위로만 남아 있다. 그러면 질문이 두 개 남는다. 첫 번째 질문부터 보자. ‘술’의 ‘ㄹ’이 ‘ㄷ’이 된 이유는 뭘까?
온 국민이 모두 아는 ‘청산별곡’의 일부이다. 6장에서 ‘바ㄹ·ㄹ’에 주목하자. ‘바다’의 옛말이다. 바다의 ‘ㄷ’은 청산별곡이 불리던 고려시대에는 ‘ㄹ’을 가진 단어였던 것이다. 국어에는 원래 ‘ㄹ’이었던 것이 ‘ㄷ’으로 바뀐 것은 그 수가 제법 된다. 이 때문에 맞춤법에서는 원래 ‘ㄹ’ 소리였던 것을 ‘ㄷ’으로 적도록 하여 ‘ㅅ’과 구분하는 것이다. 그 예들은 아래와 같다.
―반짇고리(바느질+고리), 사흗날(사흘+날), 섣달(설+달), 이튿날(이틀+날)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수저’에서 ‘술’의 ‘ㄹ’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말의 규칙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오래전에 만들어져 지금도 쓰이는 단어 안에는 예전 규칙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수저’ 역시 그런 예다. ‘술’과 ‘저’가 각각 단어로 남아 있던 그 시대에는 ‘ㅅ, ㅈ, ㄷ’ 앞의 ‘ㄹ’이 탈락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 규칙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소나무, 수저, 바느질, 부삽’ 등의 단어에 그 흔적이 아직도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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