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클럽가입 전상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03시 00분


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우와, ‘밀레니엄’이다.”

이게 웬일이람. 씩 미소가 번졌다. 뜸했던 친구의 ‘까똑’이 이런 기분일까. 19일 발행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마주한 흥분은 꽤나 옹골찼다.

읽은 사람은 안다. 스티그 라르손. 일면식도 없는 스웨덴 소설가의 요절이 얼마나 헛헛했는지. 2005∼2007년 나온 3권의 범죄스릴러는 그만큼 끝내줬다. 한때 국내에선 절판됐던 이 소설이 다시 번듯해져 돌아오다니. 유족과 출판사가 선임한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새로운 4권까지 함께.

무작정 꾐에 넘어가려는 찰나. 책 띠지에 야릇한 문장 하나가 눈에 콱 박힌다. “1억 부 클럽 진입을 앞둔….” ‘1억 부 클럽?’ 오호라, 그런 게 있어. 지구 곳곳에서 그렇게나 많이 봤다니. 그럼 그 클럽에 가입한 영광의 얼굴은 도대체 누굴까. 괜히 감질나서 인터넷을 쑤셔댔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역시 이 클럽의 ‘회장’은 성경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최소 5억 부 이상 찍었으리라 추산한다. 다만 1964년 출간된 마오쩌둥(毛澤東)의 ‘마오 주석 어록’이 6억5000만 부로 성경을 앞질렀단 주장도 있다. 소설에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약 5억 부로 압도적인 1위. 동양권에선 ‘홍루몽’이 1억 부를 넘겼다. 참고로 테두리 바깥이나 약 4000만 권이 팔린 한국책도 리스트에 있다. ‘수학의 정석’이다.

작가로 치면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포함해 85권이 거의 히트하며 총 20억 부 이상 팔렸다. 단일 시리즈 역시 영국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세상을 들썩였던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는 지금까지 5억1000만 부가 나갔다.

재밌긴 한데, 뭔가 영 석연찮다. 아무리 뒤져봐도 ‘1억 부 클럽’이란 명칭이 없는 거다. 판매량이 나오니 1억 부 기준으로 가르면 되긴 한데….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 한 출판사에 전화를 넣어 봤다.

“저희가 알기로 그런 클럽은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국내에서’ 쓰는 말이에요. 굳이 따지면 거짓말인 거죠. 하지만 한국 독자들이 워낙 그런 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랄까요. ‘3대 기타리스트’ 뭐 이런 거처럼.”

젠장, 뒤통수가 띵했다. 분하긴 한데 대꾸할 말이 없다. 그놈의 클럽 뭐시기에 더 혹한 게 사실이니. 얼마 전 보도됐던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건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계 7대 귀여운 강아지 같은 걸 뽑은 단체한테 혈세 170억 원을 썼다. 왜 이 모양인지.

“낙심할 건 없습니다. 워낙 한국인은 ‘평판’을 중시하거든요. 과하긴 해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기질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젠 균형감을 찾을 필요가 있죠. 타인의 시선, 특히 서양의 잣대에 너무 휘둘려요. ‘경제 규모 세계 10위’가 삶의 질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건 이제 다들 알잖아요?”(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그래, 이젠 좀 편해지자. 외국인한테 ‘두 유 라이크 김치(요즘은 치맥)’도 그만 하자. 그럼 대놓고 싫다 그러겠나. 어차피 밀레니엄은 모르고 봐도 좋았다. 1억 부 클럽이건 말건. 아무리 팔린들 내가 감흥 없으면 뭔 소용인가.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다. 굳이 ‘공인 인증’받지 않아도.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소설 밀레니엄#스티그 라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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