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어떤 공권력 배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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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공무원 때문에 손해를 보면 보통 국가와 공무원 양쪽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한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씨의 유족은 살수차를 조종한 한모, 최모 경장에게 국가와 연대해 각각 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손해배상 판결이 나면 보통 국가가 일단 피해자에게 배상하고 나중에 잘못한 경찰관에게 그 돈을 달라고 한다. 다만 잘못한 경찰관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국가가 다 책임진다.

▷백 씨 관련 소송에서는 국가배상 소송으로는 특이하게도 국가가 아니라 경찰관 2명이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백 씨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는 청구인낙(請求認諾)을 했다. 경찰관들이 자기 책임으로 다투지 않고 돈을 물겠다고 한 이상 국가에 그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경찰관들이 무슨 돈이 많아서 돈 많은 국가를 놔두고 자기 돈으로, 그것도 정당한지 부당한지 다툼이 있는 직무상 행위에 대해 5000만 원씩을 배상하는지 의문이다. 경찰관들은 “더 이상 유족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그런 마음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것만이 이유였을까 싶다.

▷소송이 처음 제기됐을 때의 피고 국가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였다. 지금 이어받아 소송을 진행하는 피고 국가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는 이 소송에서 이기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 청구인낙을 하면 국가가 재판 결과도 지켜보지 않고 배상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 같으니까 경찰관들을 앞세워 배상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경찰관들이 물대포를 쏘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했으나 기소할 혐의를 찾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다시 조사하고 있다. 경찰관들로서는 기소가 두렵기도 하고, 기소를 면한다고 해도 인사권을 쥔 경찰 수뇌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사건 당시 신윤균 서울4기동단장도 곧 청구인낙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직이 아닌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만 소송을 계속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백남기#국가배상 소송#박근혜 정부#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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