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탤런트 최불암 김민자 부부가 며칠 전 결혼식을 올리고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답니다.” 그때, 온양온천은 최고 인기의 신혼여행지였다.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조선시대에 이미 왕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왕실은 여기 행궁을 짓고 휴양치료와 집무 공간으로 사용했다. 태조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와 사도세자가 온양온천을 찾았다. 신비한 물이 솟아나 신정(神井)이라 부르기도 했다.
온양행궁은 1900년대 초 일본인에게 넘어갔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온양온천주식회사는 행궁 건물을 대부분 파괴하고 일본식 온천건물 온양관을 지었다. 1926년엔 경남철도가 온양관을 인수했다. 1922년 천안∼온양 사이 충남선(훗날의 장항선)을 개설한 바 있는 경남철도는 이곳을 온천 유원지로 바꾸기 시작했다. 1928년 객실 대욕장 대연회실 식당 오락실 정원 연못 테니스장을 갖춘 신정관이 문을 열었다.
온양온천은 이렇게 왕들의 치료 통치 공간에서 대중의 소비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충남선 열차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온양온천으로 몰렸다. 1930년 ‘조선 명승지 추천 투표’에서 온양온천은 전국 2위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신혼여행지로도 인기를 끌었다.
6·25전쟁 때 신정관이 불에 타버리자 신혼부부들의 발길이 주춤해졌다. 정부는 1956년 신정관 자리에 현대식 온양철도호텔을 세웠다. 신혼부부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1960년엔 장항선 서울∼온양온천 구간 열차에 신혼부부를 위한 ‘허니문 트레인’ 한 량을 증설했다. 좌석을 28석으로 줄여 널찍하게 공간을 확보하고 두 좌석 사이에 테이블을 설치했다.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신혼여행지로서의 명성은 198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온양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그러던 중 2008년 수도권 전철이 온양온천까지 이어지면서 온천객이 다시 늘어났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온양온천역에 내려 바로 앞 족욕탕에 발을 담그곤 “여기로 신혼여행 참 많이 왔었지”라고 말한다.
온양온천의 중심은 행궁 자리다. 거기 들어섰던 온양철도호텔은 지금의 온양관광호텔로 이어졌다. 이제, 호텔 주변 행궁의 흔적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왕실 온천의 흔적, 일제강점기의 상흔, 신혼여행의 낭만을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긴 추석 연휴, 온양온천이 생각날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