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우체부 아저씨’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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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아닌 집배원으로 개칭된 것이 2004년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보통 둘 다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손편지가 워낙 귀해진 세상인지라 요즘 집배원의 가방에는 세금, 신용카드 등 온갖 고지서가 잔뜩 담겨 있다. 그래도 중장년 세대의 가슴 한구석에는 동요 ‘우체부 아저씨’의 풍경이 오롯이 저장돼 있다.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아저씨 큰 가방 메고서 어디 가세요/큰 가방 속에는 편지 편지 들었죠 동그란 모자가 아주 멋져요/편지요 편지요 옳지옳지 왔구나 시집간 언니가 내일 온대요.’

▷이 노랫말처럼 정겨운 ‘우체부’가 등장하는 영화로 ‘일 포스티노’를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작은 섬을 배경으로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순박한 집배원 마리오의 특별한 만남을 그렸다. 네루다에게 시의 은유, 느리게 사는 삶의 방식을 깨친 마리오는 섬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녹음하고 기록한다. 절벽의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등.

▷예전에는 우체국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아날로그 삶의 표상이었다. 지금은 우편 서비스에 금융기능을 겸업한다.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에 따라 선진국에선 우편과 금융사업을 분리해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독일은 이미 우편, 통신, 금융 분야 민영화를 마쳤고 일본은 어제부터 우정 민영화를 위한 주식 매각에 들어갔다. 2015년 주식의 신규 공개 이후 두 번째다. 반면 한국에선 집배원 과로사가 속출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이슈다. 우정사업본부에 의하면 5년간 월평균 51시간의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골이나 섬마을 어르신들에게 여전히 제일 반가운 손님은 집배원 아닐까 싶다. 오토바이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달려와, 도시로 떠난 자식들의 소식을 전해주니 고맙고, 잠시나마 따스한 말벗이 돼주니 그것 또한 고맙다. 공과금 대납, 약 심부름 등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는 것도 다반사. 유난히 길어진 추석 연휴,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둘러앉아 ‘우체부 아저씨’를 손꼽아 기다렸던 유년 시절로 추억 여행을 해봐도 좋을 듯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우체부#집배원#우체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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