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 발표 후 충격과 고통 속에 산 故 마광수 교수
예술과 외설 구분은 시간 지나면 달라져
마교수 작품 판단도 독자들에 맡겨야
마광수 교수가 죽었다. 1991년 발표한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로 평가받고,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근거로 법적 유죄 판결을 받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학교에서 해임되면서 마음의 충격과 우울증이 심했으며, 복직한 후에도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한다. 마 교수의 죽음 이후, ‘창작 의욕을 말살시킨 사회적 타살’ ‘여성에게 성 주체성을 부여했고 인간 내면의 성에 대한 허위의식을 드러낸 작품’ ‘이데올로기 과잉인 시대와의 불화로 인한 비극’ 등의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과연 그런가. 필자는 예술과 외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예술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검열과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이 정당한가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점, 더 정확하게는 어떤 것을 예술작품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포르노그래피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성 또는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보는 사람의 성적 흥분을 유발시키려 하는 것을 우리는 포르노그래피라고 한다. 그런 것을 외설스럽고 음란하다고 평가하며, 그때 적용하는 기준은 도덕성이다. 그런데 도덕성이라는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가 변하면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이라는 데에서 논란이 생긴다.
한 여인이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우리를 향해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는 1863년 발표 당시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술작품 속 여체의 누드가 신화나 우화의 비너스처럼 베일에 가려진 채로 보였다면, 마네는 거리의 여인이라는 현실 속 여인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였다. 산업혁명 후 물질만능적인 사고가 팽배하고, 도덕이나 종교 같은 정신적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드높던 19세기 말의 사회 통념도 한몫했다.
동성애와 에이즈 등 도발적인 주제를 대담하게 다루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라는 미국의 사진작가가 있었다. 1989년 그가 에이즈로 죽은 후 신시내티 현대미술센터에서 개막한 그의 개인전이 검찰에 기소당하고 개막과 동시에 폐쇄 조치됐다. 그의 작품이 포르노그래피이고, 내용이 외설적이라는 점에서였다. 1990년대 미국의 보수주의적 사회 분위기 아래서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동성애나 에이즈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 교수가 ‘즐거운 사라’를 발표한 해인 1990년대 초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대생 사라가 벌인 생면부지 남자와의 즉흥적인 동침, 스승과의 부도덕한 성행위, 여자친구와의 동성애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검열과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반대 입장은 외설과 음란한 것도 성의 표현 중 하나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옹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맞서는 입장은 예술가 개인의 자유가 더 많은 다른 개인들에게 미치는 해악을 막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런 작품을 접한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을 일탈적이고 변태적이며 비도덕적인 행위에 이르게 하고 사회의 공공질서를 해치게 된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응일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사회 속의 비도덕적인 문란함과 외설 작품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설명해줄 경험적 증거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표현의 자유가 무조건 옹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작품의 검열과 법적 처벌이 보다 객관적이어야 하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네나 메이플소프의 작품 창작 당시 똑같이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잊힌 작품이 무수히 있었겠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인상주의 작품들과 함께 기억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고, 메이플소프의 사진도 독특한 화면 구성으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했던 부분들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작품의 사회적 평가보다 예술적인 성취가 더 높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 교수는 안타깝게 생을 마쳤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평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 발표된 지 26년이 지난 ‘즐거운 사라’가 여전히 출판 금지 상태에 있다 한다. 필자는 우리의 윤리의식이 소설 하나로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 않다고 믿는다. 이제는 ‘즐거운 사라’를 출판 금지에서 놓아주고, 그저 외설인지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를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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