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 건널목에서 모 정당 현수막을 보는 순간 발걸음이 절로 멈춰졌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입시, 취업, 결혼에 대해 묻지 말고 ‘탈핵’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내용이다. 모처럼 모인 가족 친지들 가슴에 생채기 낼 만한 얘기는 하지 말자는 제안은 참신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권한 시사이슈 탓에 집안 분위기 심란해지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
▷바야흐로 화병(火病) 시즌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에만 있다는 화병은 명절 전후 빈번히 발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하면 한가위가 있는 9, 10월에 병원을 찾는 화병 환자들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병으로 시작된 명절증후군은 명절 이혼으로도 이어진다. 최근 5년간 설과 추석 이후 이혼 건수가 전달에 비해 평균 11.5% 늘어났다는 게 통계청의 작년 발표다. 가부장제 영향으로 시집과 친정 사이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아직도 존재한다. 명절증후군 바이러스는 고부 갈등에 주로 기생하는데 어느 시어머니의 처방전은 단순 명쾌하고 인상적이다. ‘내 딸이라면 시키지 않을 것을 며느리에게 요구하지 말자.’
▷그래도 알파걸 세대 며느리의 부상과 더불어 다방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수많은 며느리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며 시집 구성원에 대한 호칭 문제를 제기한 글이 올라 호응을 얻고 있다. 시댁 식구의 호칭은 아주버님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등 존칭 일색인 반면 처가는 처형 처남 처제 등 높임의 뜻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청원인은 “2017년을 살고 있는 지금 성 평등에도 어긋나며 여성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호칭”이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에 ‘불평등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된다. 외가 친가 본가란 말도 개선해야 한다’는 댓글이 붙는 등 세를 불리고 있다. 어제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올 한가위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함께 즐거우면 좋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누구나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 명절의 존재 이유 아닐까. 한쪽의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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